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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ter Wi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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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덕대왕신종명

 

성덕대왕신종명(聖德大王神鍾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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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을 통일한 신라가 통일전쟁 뒤의 후유증을 쉬이 치유할 수 있었던 것은 불교를 중심으로 대국민화합을 이끌어 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국민화합을 바탕으로 35대 경덕왕대에 이르러서는 불국사와 석굴암 조성으로 이어졌고, 신기의 성덕대왕신종을 주조하는 등 신라문화의 황금기를 구가하게 되었다.

성덕대왕신종은 경덕왕이 아버지 성덕대왕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구리 12만근을 녹여 종을 주조하기 시작했으나 완성하지 못하고 돌아가자 그 아들인 혜공왕이 그 유지를 이어 771년에 완성을 보게되었다. 이 종은 성덕대왕이 태종대왕을 위하여 창건한 봉덕사에 안치하였으나 북천의 범람으로 절이 유실되어 하천에 묻혀 있다가 세조5년(1460)에 영묘사로 옮겨졌고, 우여곡절 끝에 지금의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옮겨져 보관되고 있다. 마음속 깊이 스며드는 아름다운 종소리의 여운은 물론 그 외형 또한 유래를 찾아 볼 수 없을 만큼 수려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감동과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또한 1048자에 달하는 명문에는 聖德大王神鍾이라는 종명과 함께 종을 주조한 연유에 대해서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마음을 가다듬고 명문에 담긴 뜻과 의미를 되새겨 본다.

 

"무릇 지극한 眞理는 形象을 초월한 것을 포함하기에 이를 보지만 그 근원은 볼 수 없으며, 大音(진리의 소리)은 천지간에 진동하나 이를 들어도 그 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비유의 말을 내새워 三眞의 오묘한 진리를 알게하고, 신종을 달아올려 一乘의 원음을 깨닫게 합니다. 무릇 종이란 부처님의 땅 인도에서 살펴보면 카니시카왕(大月氏國)이 쓰기 시작했고 중국에서는 고연(鼓延)이 처음으로 만든 것입니다.

부풀어 속이 비었어도 능히 소리내어 그 메아리는 끊이지 않고, 장중하여 굴리기 어렵고 그 몸체는 말려들거나 구겨지지 않는다. 이러한 까닭으로 왕의 큰 공을 그 위에 새기고 백성들이 고통에서 벗어남도 또한 그 속에 적습니다.

성덕대왕을 삼가 생각하면 덕스러움은 山河와 같이 높고 그 이름은 日月과 같이 빛나고, 忠直과 善良을 높여 세상을 다스리며 예악을 숭상하여 풍속을 바르게 하였습니다. 시골에는 그 근본인 농사에 힘쓰고 저자(都市)에는 추하고 법도에 어긋난 물건이 없으며, 세상은 재물을 싫어하고 학예(文才)를 숭상하며 미세(微細)한 영험에 뜻을 두지 않고 훌륭한 가르침에 뜻을 두었습니다.

사십여년을 성심으로 나라를 다스림에 한 번도 전쟁으로 백성을 놀라고 들뜨게 한 일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까닭에 사방의 이웃나라는 만리 길을 멀다않고 使臣을 보내어 대왕의 높으신 기풍을 바라볼 뿐 침략코자 노리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죽음은 언제 올지 헤아리기 어려워 대왕의 생시(生時)도 빠르게 지나쳐 붕어(崩御) 하신지 이미 34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효성이 지극한 경덕대왕이 계셨을 때엔 大業을 계승하여 모든 정사를 힘써 보살폈으나, 일찍이 모후(母后)를 여의매 세월이 지날수록 그리워하던 중 거듭하여 부왕(父王)까지 붕어(崩御)하시니 슬픔 속에서 보위에 오르시게 되었습니다. 이에 사모하는 정(情)과 명복을 빌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하여 구리(銅) 12만근을 삼가 바쳐 큰 종(丈鍾) 하나를 만들고자 했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문득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이제 우리 聖君(惠恭王)의 행하심은 조상들(朝宗)과 合一하고 그 뜻은 眞理에 부합하여 유별난 상서가 일어남은 고금에 드문 일이었고, 훌륭한 덕은 항상 으뜸이었습니다. 육가의 용운은 대궐을 촉촉히 뿌리고 九天에 가득한 진리의 (천둥)소리 궁궐에 진동함이여. 시골에는 오곡백과 무르익고, 서울에는 서기 어리어 밝고 밝으니, 이는 곧 탄생하신 날과 정사에 임하신 때의 응보입니다.

우러러 생각하면 태후의 은혜는 땅과 같이 넓고 백성을 사랑으로 교화하고 마음은 하늘의 거울과 같았으며 부자간의 사랑과 효를 권장하였습니다. 이러한 것은 아침에 종친의 현책과 저녁엔 충신의 보필함을 아시고 아무말 없이 택하지 않은 일이 없었으니 어찌 행함에 허물이 있었겠습니까. 이에 유언에 따라 오랜 숙원을 이루고자 有司에게 사업을 진행케 하고 工匠으로 거푸집을 만들게 하였습니다.

신해년 12월 이때 日月은 한층 빛나고 陰陽의 기운이 고르며 바람은 부드럽고 하늘은 조용하여 神鍾을 이루었습니다. 그 모습은 泰山이 우뚝선 것 같고, 그 소리는 우렁찬 용의 소리 같았으며, 위로는 지극히 높은 하늘과 아래로는 地獄世界에 이르기까지 막힘 없이 소리쳐, 보는 이는 기이함을 칭송하고 듣는 이는 모두 복을 받을 것입니다.

원컨대 이 오묘한 인연으로 尊靈을 받들고 도와 맑은 진리의 소리를 듣게 하고, 설법이 없는 법석에 올라 삼명(해,달,별)에 뛰어난 마음을 맺어, 일승의 진경에 들게 하며, 나아가 구슬꽃(왕족)이 금나무 가지에 맺혀 영원토록 무성케 하여 나라의 대업이 철위산처럼 번창케 하고, 모든 중생은 지혜의 바다에 함께 파도를 타고 티끌 세상을 벗어나 깨달음의 길에 오르게 하소서.

신 필해는 졸렬하고 재주 없으나 감히 임금님의 말씀을 받들어 반초의 붓을 빌리고 육좌의 언변에 따라 그 원하는 뜻을 지어 이 종에 새기고, 한림대 서생 대나마 김복환은 글을 씁니다."

- 경주박물관회 김원주회장 국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