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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ter Wi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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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고분

 

가. 경주지방의 고분

신라의 무덤양식은 경주지방과 기타지방사이에 여러 가지 차이점을 보여주고 있으며 또한 낙동강을 경계로 동쪽(신라지구)과 서쪽(가야지구)에도 지역적인 차이가 존재하고 있다. 고신라의 묘제는 기본적으로 지석묘의 지하구조에서 출발하여 김해시대의 석곽묘로 이어진다.

신라의 고분이 지하에 만들어진 밀폐식 석곽묘라는 점에서 돌 구하기가 어렵고, 또 신라사람들이 풍부한 부장품을 매장한 덕으로 오늘날 신라문화연구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1) 평지 고분

평지고분은 주로 적석목곽분이며 통일전후로해서 석실분이 등장하고 왕릉의 규모도 소형화되었다.

2) 산지고분

산지고분은 석실분이 주류이며 이것은 고구려와 백제를 병합하고 나타난 무덤양식이라 추정된다. 이러한 석실분은 평지에 있는 경우도 있다.

3) 신라고분의 변천

신라지역에서 신라 이전의 무덤양식은 여느 지역의 변천과 동일한 양상을 보인다. 초기의 지석묘(고인돌), 굴안에 매장 또는 유기하는 굴장, 옹기를 관대신 사용한 옹관묘, 청동기시대 후기부터 초기 철기시대에 걸쳐 발달한 토광묘 등으로 구분이 된다.

·다곽묘

한 봉분안에 여러구의 시체를 묻은 것으로 아마 한 가족을 공동으로 장사 지낸 듯 하며 신라초기에 해당된다.

·석곽묘

미추왕릉 지구와 같이 2×1×0.6m(깊이) 정도 크기의 석곽으로서 냇돌로 벽을 쌓고, 천장은 판석을 몇장 덮었으며, 봉토 주위에는 호석열이 돌려져있다. 그러나 무덤들이 너무 다닥다닥 붙어 있어 봉토는 있어도 그리 크지 못했거나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기의 경우도 적지 않았으리라 추측된다.

이 석곽묘는 확실히 경주 지구에서 가장 오랜 무덤 양식이라고 생각되지만, 적석목곽분이 보급되고 있을 때도 일부에서도 계속 건설된 양식이다.

·적석목곽분(돌무지 덧널무덤)

적석목곽분은 ①평지에 판 구덩이, ②그 안에 넣은 목곽, ③목곽 주위와 위를 덮은 돌,④시체는 거의 동쪽으로 누워 있으며, 단독장이라는 점 그리고⑤풍부한 부장품과 때로 그를 위한 부곽이 있다는 것이 공통된 특색이다.

 

경주의 적석 목곽분은 초기 단계를 지나 5∼6세기의 전성기가 되면 묘지도 차차 북쪽으로 확장되고 무덤도 커지지만 초기의 가족적인 다곽묘가 단곽묘로 되고 말의 순장도 마구의 부장으로 상징되는 등 형식화 되는 경향이 엿보인다. 그러나 6세기경이 되면서부터 신라의 무덤은 웅장하고 거대한 것으로 발전하게 된다. 대표적인 예로 노서동의 봉황대고분, 황남동98호 고분 등이 있다.

 

 

4) 고분의 형태

가. 겉모양

고분은 겉모양에 따라 둥근두덤, 쌍무덤, 네모무덤의 세 가지가 있다. 경주 고분의 대부분의 둥근무덤(원형분)이며 가장 대표적인 양식이다. 쌍무덤(표형분)은 신라 고분에서만 볼수 있는 것으로, 먼저 만든 분묘의 봉토와 호석(둘레돌)의 일부를 떼어 내고 그 자리에 뒤에 만드는 분묘의 봉토와 호석을 붙이는 것이며, 원칙적으로 부부묘의 경우에 성립된다. 약 10기의 표형분 중에서 가장 큰 것은 대능원 안에 있는 98호 고분이다. 방형분(네모무덤)은 밑부분이 사각형으로 되어 있는 무덤으로 고구려무덤 양식에 영향을 받은 듯 한다. 신라의 고분 중 단 1기가 불국사역 앞(구정동 방형분)에 있다.

 

나. 호석의 변화

봉토의 둘레 기초 부분에 둘레돌을 돌리고 비석을 세운 양식입니다. 원래 봉토주위에 돌을 돌리는 것은 옛 신라시대에 시작되었는데 처음에는 봉토의 아래 경계를 표시하는 정도인 한 줄의 돌이 점점 2단, 3단으로 높아지면서 돌담으로 봉토 밖으로 나타나게 되고 무너짐을 막기 위해 선덕여왕릉 처럼 지탱할 수 있는 보조석을 설치하는 경우도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