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역사와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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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의 현장
 
Peter Wi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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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불교

 

신라의 불교는 크게 3기로 구분할 수 있다. 아도화상(阿道和尙)의 불교전래로부터 원효까지의 1기와 의상의 화엄종 전래 이후 진표(眞表)의 법상종 성립까지의 2기, 도의선사에 의한 선종선종의 전래 이후 나말여초 구산선문(九山禪門)의 번성을 이룬 3기를 말한다. 이렇게 신라의 불교 전체를 놓고 볼 때, 크게 3번에 걸친 발전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1기 : 527년의 신라의 불교수용은 고구려의 372년이나 백제의 384년에 비해 거의 150여 년이나 뒤진 것이었다. 또한 그 수용과정에 있어서도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법흥왕은 근신 이차돈을 희생시키고서야 비로소 불교를 공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신라에서는 불교의 공인과정이 단순하지 않은 관계로, 그 단계를 전래기, 과도기, 수용기로 구분하고 있다. 즉 눌지왕대 아도화상의 전교(傳敎)로부터, 소지왕대의 사금갑(射琴匣)사건을 거쳐, 법흥왕대의 이차돈(異次頓)사건을 겪으면서 신라에 불교가 수용된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신라불교의 수용시기는 중고기(中古期)에 해당되는 시기로서, 법흥왕, 진흥왕, 진지왕, 진평왕, 선덕여왕, 진덕여왕이 모두 佛敎式 王名을 가진 군주였다. 특히 진흥왕은 순수(巡狩)에 승려를 대동하였고, 화랑도에는 이들을 지도할 인물로 승려낭도를 두기도 하였던 것이다. 신라는 불교의 공인 이후 국가의 주도로 급속히 불교가 전파되어갔지만, 재래의 무속신앙과의 습합을 통해 신라사회에 사회사상으로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2기 : 신라 중대의 불교는 7개의 사성전(寺成典)을 갖춘 국찰(國刹, 사천왕사, 봉성사, 감은사, 봉덕사, 봉은사, 영묘사, 영흥사) 로 상징되는 국가차원의 불교와,  민간에서 개인의 수행에 힘썼던 노힐부득과 달달박박,  광덕과 엄장의 존재가 함께 공존하는 양상을 띠고 있었다. 또한 교학적으로는 유가계불교와 화엄계불교가 양대산맥을 이루어 나가면서 그 깊이를 더해갔다. 그리고 신앙적으로는 아미타신앙, 미륵신앙, 관음신앙 등이 공존하였다.

3기 : 신라 하대의 불교는 새로운 사조인 선종의 유입으로 일대 변화가 일어났지만, 기존의 화엄종과 법상종은 왕실과 지배층과 밀접한 관련 속에서 건재하고 있었고, 국가의 혼란에 따른 신인종의 재등장과 미륵사상의 대두와 같은 구도로 짜 볼 수 있다.

 

제1기 교원연수 강좌교재 요약 (동국대 김복순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