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역사와 문화
 
신라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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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ter Wi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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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역사

경주는 신라 천년의 도읍지로서, 신라의 시조인 박혁거세가 기원전 57년에 나라를 세운 이래로 56대 경순왕이 1,000여년이나 이어오던 신라를 고려 왕건에게 넘겨줄 때까지 실로 장구한 세월동안 지속되어온 역사도시이다.

사람이 사는 곳에 삶의 흔적이라 할 수 있는 문화가 존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나 경주라는 조그마한 도시를 그토록 애지중지하고 소중히 생각하는 것은 우리의 뿌리라 할 수 있는 수수께끼같은 고대 문화와 민족적 자긍심을 불러 일으키는 문화유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들어 경주의 보존 방법과 개발에 대한 많은 논란이 일어나고 있는 것 또한 경주의 보존 가치에 대한 당연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한동안 경주를 찾는 사람들이 감소한 적이 있으나, 지금 생각하면 일시적인 현상이었다고 생각되며, 최근들어 어려운 경제 여건하에서도 각종 단체, 기업연수, 개인에 이르기까지 경주와 신라에 대한 관심으로 방문자가 점차 늘어나고 있는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사단법인 신라문화진흥원에서는 우리의 신라문화를 알고자 하는 분들에게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바램에서 기존의 여러 가지 자료들을 참고하여 신라의 역사와 문화를 개략적이나마 소개하고자 하오니 많은 이용을 바란다.
지금의 경주는 고려시대에 붙여진 이름으로 신라 당시에는 ’새벌’, ’서나벌’, ’서라벌’이라 불렀으니 지금의 수도라는 뜻의 서울은 여기서 생긴 말이다.

신라는 시조 박혁거세가 기원전 57년에 경주평야를 무대로 한 6개촌락에서 비롯되어 1,000년동안 영화를 누린 나라이다. 신라 건국당시에는 진한 12개국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은 조그마한 나라였지만, 주변의 작은 나라들을 정복하면서 고대국가로서의 기틀을 닦았다. 5∼6세기 들어서는 낙동강 유역과 한강유역을 차지한 뒤 7세기 중반에 이르러서는 백제와 고구려를 차례로 합치고, 마침내 통일전쟁 과정에서 외교적 힘을 빌었던 중국 당나라의 야심을 이 땅에서 몰아냄으로써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룩하게 되었다.

이처럼 신라는 국토통일의 대역사를 달성하였을 뿐만아니라, 고구려, 백제문화와 가야문화를 비롯하여 중국은 물론이고 인도, 서역의 문화를 받아들여 신라만의 독특한 문화를 이룩함으로써 세계속의 신라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결국 신라의 삼국통일은 우리민족의 문화적 영향과 가치를 배가시키는 동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신라의 역사는 크게 삼국통일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진다. 하지만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의하면 다음과 같이 여섯 시기로 세분된다.

시기

연 대

삼국사기

삼국유사

특 징

제1기

 B.C.57(혁거세 Ⅰ)
  ∼ A.D.356(흘해이사금 47)

상대

상고

 연맹왕국 형성기

제2기

 356(내물마립간 Ⅰ)
  ∼ 514(지증왕 15)

상대

상고

  연맹왕국 발전기

제3기

  514(법흥왕 Ⅰ)
  ∼ 654(진덕여왕 8)

상대

중고

 중앙집권체제의 완성기

제4기

  654(태종무열왕 Ⅰ)
  ∼ 780(혜공왕 16)

중대

하고

  삼국통일에 의한 황금시대

제5기

  780(선덕왕 Ⅰ)
  ∼ 889(진성여왕 3)

하대

하고

  지방세력의 등장기

제6기

  889(진성여왕 3)
  ∼ 935(경순왕 9)

하대

하고

  내란기

표에 보듯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주로 왕위의 변화와 불교의 공인 등을 갖고 각기 독자적인 시대구분을 하고 있는데, 이는 신라 역사의 발전사와 대략 일치한다.

※ 참고자료
       이기동, 신라역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13권 한국정신문화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