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역사와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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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기


                             제6기  내란기

889년(진성여왕)∼935년(경순왕)


포석정
 

이 시기는 왕통상으로는 제5기의 계승·연장이었으나, 신라가 50년 가까운 내란 끝에 마침내 멸망하게 되는 쇠망기였다. 하긴 이 시기에 신덕왕(912∼917), 경명왕(917∼924), 경애왕(924∼927)등 이른바 세 명의 박씨 왕이 등장했으나, 이 박씨 왕통의 실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의심이 가며, 그들 역시 김씨 혈통을 가졌던 것이 아닐까 짐작된다.

이 시기의 두드러진 특징이라면 지방의 영웅들이 전국 도처에서 세력을 키워 신라 조정이 전혀 이들을 통제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사실 왕실 자체가 무방비 상태였다. 그리하여 결국 927년에는 후백제의 국왕 견훤이 군대를 이끌고 경주로 쳐들어 와서 경애왕을 죽이고 경순왕(927∼935)을 세우기까지 했다. 이렇게 볼 때 이 시대의 주역은 신라조정이 아니라 전국방방곡곡에 성을 쌓고 사병을 거느리며 자립하고 있던 호족들이며, 그들 중에서도 각기 백제와 고구려의 부흥을 부르짖으며 정부형태를 갖춘 견훤과 궁예였다고 할 수 있다.

신라는 그 두 사람이 서로 필사적인 대결을 벌이고 있는 동안 그 명맥이나마 간신히 유지할 수 있다. 그리고 918년에 궁예를 쓰러뜨린 뒤 즉위한 고려태조 왕건이 신라에 대해 친선정책을 펴는 동안 그 수명을 연장시킬 수가 있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고려가 후백제에 대하여 우월한 위치를 확보하게 되자 신라의 경순왕은 더 이상 버티기 어려움을 깨닫고 935년 11월 고려에 자진 항복하여 천년왕국의 막을 내리고 말았다.
 

*참고자료
  이기동, 신라역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13권 한국정신문화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