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역사와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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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ter Wi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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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기

제 1기  연맹왕국 형성기

B.C.57(박혁거세)∼ A.D.356(흘해이사금)


김알지의 탄생설화가 얽힌 「계림」

제1기는 신라의 건국으로부터 연맹왕국을 완성하기까지의 긴 시기이다. ’新羅’라는 국호는 6세기 초 지증왕때에 정해졌는데, 그 전까지는 역사서에 따라 사로·사라·서나·서라·서벌 등 여러가지로 쓰여지고 있다. 이는 ’새로운 나라’, ’동방의 나라’ 혹은 고대의 성스러운 장소로 여겨지곤 했던 ’수풀’의 뜻으로 해석된다.

신라도 한국 고대의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성읍국가로 출발했다. 성읍국가란 종전까지 역사학계에서 부족국가라고 부르던 것으로, 그리스의 도시국가 혹은 성채왕국, 고대 중국의 읍제국가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삼국사기」신라본기에는 신라의 건국을 B.C. 57년이라 했지만, 성읍국가로서의 출발은 이보다 다소 빨랐던 것으로 짐작된다.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신라 역시 청동기문화의 세례와 더불어 차츰 부족장의 권한이 강화됨으로써 성읍국가가 출현한 것이라 생각할 때, 경주지역으로 청동기문화가 흘러들어온 것은 아무래도 B.C. 1세기보다 몇 세기 이전의 일로 보이기 때문이다.

성읍국가로서의 신라는 경주평야에 자리잡고 있던 급량·사량·본피·한지·습비 등 6개 씨족의 후예들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처음에 평야 주위의 산이나 구릉지대에서 각기 취락생활을 했던 것 같으며, 차츰 평야지대로 생활권을 옮기는 과정에서 국가를 형성했던 것으로 본다.

전설에 의하면 급량 출신인 혁거세(일명 불구내)가 최초의 지배자, 곧 거서간으로 추대되었다고 한다. ’혁’이 ’밝음’의 뜻이며, ’불구내’가 ’붉은·밝은’의 이두식 표기인 것으로 미루어 이는 신라의 독특한 광명 숭배 사상에서 나온 호칭으로 볼 수 있다. 그러니까 혁거세 거서간이란 곧 광명이세의 왕이란 뜻이 된다. 한편 그는 사량 출신의 알영과 혼인했다는데, 이 알영이란 계란의 알 혹은 곡물의 알에서 변화된 말로 선조의 신령을 섬기는 미혼 여성이라는 뜻으로 짐작된다. 왕과 왕비가 각각 급량과 사량 출신이었던 점으로 미루어 최초 신라는 6개 씨족 가운데서도 특히 이 두 씨족을 중심으로 하여 성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두 씨족은 뒤에 성씨제도가 도입되었을 때 각각 박씨성과 김씨성이 되었다.

그 뒤 신라의 지배층은 동해안쪽으로부터 진출해 온 새로운 세력, 탈해집단에게 제압을 당하게 된다. 이 탈해집단은 비록 철기문화를 갖고 있었지만 부족적인 기반이 본래 미약했었기 때문에 탈해(역사서에서는 그를 석씨로 칭하고 있다)가 죽은 뒤엔 곧바로 종래의 지배층에 의해서 해체된다. 그러다 A.D. 2세기 후반경 탈해의 후손임을 자처하는 새로운 세력집단이 일어나 신라의 지배권을 장락한 후, 이 석씨왕조는 4세기 중엽까지 신라의 왕위를 독점하게 된다.

이때 쯤 신라는 연합의 방법으로, 혹은 군사적인 정복을 통해 주위의 여러 동료 성읍국가들을 망라한 보다 확대된 국가를 형성하기 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 즉 종래엔 점에 불과했던 성읍국가가 일정한 영토와 영역을 지배하는 연맹왕국으로 발돋움을 한 것이다. 하지만 신라의 주변국가들에 대한 지배랄까 복속의 정도는 아직 미약했던 것 같다. 각 성읍국가는 사실 독자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과 다름 없었으며, 신라가 비록 종주국이라고는 해도 중국 군현 당국과의 외교교섭이나 교역의 권한을 부여받은 정도에 그쳐 있었기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단 신라에 복속한 국가들 중에는 불만을 품고 수도 금성으로 쳐들어 오는 경우도 있었고, 또한 토착세력의 우두머리들 가운데는 중국 군현과 서로 통하는 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4세기 초 중국 군현이 고구려에 의해서 정벌되고, 곧이어 고구려와 백제 양대 세력이 한반도 중부지역에서 날카롭게 대립되는등 새로운 상황이 전개되기 시작했다. 이에 소백산맥 너머 낙동강 동쪽사회 역시 달라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4세기 중엽 신라를 중심으로 한 국가통합운동이 급속도로 진행되어 큰 연맹왕국이 완성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