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5-08-11 00:00
뿌리내릴 곳을 찾아 (안동지구답사)
 글쓴이 : 백태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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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정사 대웅전 지붕]

분주하게 의성탑리오층석탑앞에 도착하자 여름 햇살아래 땀이 흐르고 그늘을 먼저 찾게 된다. 누가 시킨 일이라면 다들 이렇게 모이셨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들을 둘러보았다. 탑골 탑리 탑동이라는 지명을 사용하는 곳에는 예외 없이 오래된 탑들이 있고 절골이라는 지명에는 폐사지나 고찰의 흔적이 있다.
의성탑리 오층석탑은 신라탑과 백제탑의 특징이 한데 어우러진 모습을 지니고 있어 통일신라시대 석탑의 절충양식을 보여주는 희귀한 예로 보여진다. 탑신의 앞면에는 내부공간을 마련하고 여기에 문틀을 내어 두 짝의 문을 달았던 흔적도 보여 이 모든 설계가 목탑에서 본을 받은 백제탑 양식을 보여주고 있는 특이한 구조의 이 석탑은 분황사석탑에 다음 가는 오래된 석탑으로 석탑양식의 발전을 연구하는데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한켠에는 행락객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가 쌓여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안동댐 앞의 까치구멍집에서 헛제사밥으로 점심을 먹었다. 제사밥이란 제사를 지내고 나서 먹어야 제 맛이지만 제사 많은 집에서 자라 제사음식을 좋아하는 내게는 맛있는 식사였다. 지난해 가을 찾았을 때와는 계절적인 차이로 인하여 풍광은 달랐지만 월영교(月映橋)에서는 시원스레 물줄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월영교와 월영정(月映亭)은 안동시장님의 설명을 의하면 안동댐을 찾는 분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어 상징적이고 의미 있는 무엇인가를 만들어야겠다고 하여 지역에 살았던 이응태(1556-1586)부부의 아름답고 숭고한 사랑을 기념하고자 먼저 간 남편을 위해 아내의 머리카락으로 만든 한 켤레 미투리 모양을 이 다리 모습에 담았다 한다.
1998년 안동시 정하동 지역에서 택지개발을 하던중 1586년 31세의 젊은 나이에 어린 아들과 유복자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 이응태의 부인인 원이엄마가 숨진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적은 한글 편지가 관속에서 발견됐고 그들의 아름답고 애절한 사랑을 영원히 이어주고자 2003년에 안동댐에 월영교를 만들었고 2005년 4월에는 대구지검 안동지청 앞에 원이엄마의 조형물인 아가페상이 건립되었다.

신세동칠층전탑은 법흥동 고성이씨 탑동파 종택과 중앙선 철로 사이 길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었다. 탑의 기단 각 면에는 화강암으로 조각된 팔부중상(八部衆像)과 사천왕상(四天王像)이 새겨져 있으나 세월에 의한 마모로 어렴풋이 짐작해 볼 수밖에 없었다. 그 위로 시멘트로 보수한 흔적들이 아쉬움을 자아냈다. 그 시절에는 시멘트가 신소재며 최고의 재료였겠지만... 국내에 남아 있는 가장 크고 오래된 전탑에 속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지며 지붕에 기와를 얹었던 자취가 있는 것으로 보아 목탑을 모방하여 전탑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입증해 주는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자연의 생명력은 뿌리 내릴 수 있는 곳이면 어느 곳이던지 가리지 않는다. 탑 중간 중간에 자리잡은 강아지풀들 철로 콘크리트 교각의 담쟁이들..

안동이라면 의례히 유교문화 유적들을 떠올리게 된다. 나도 마찬가지고. 안동시가지 한가운데 안동역 옆 한켠에 동부동오층전탑과 운흥동당간지주가 있다.
탑은 무늬없는 벽돌로 5층을 쌓았다. 몸돌에는 층마다 불상을 모시기 위한 방인 감실(龕室)을 설치했고 특히 2층 남쪽면에는 2구의 인왕상(仁王像)을 새겨두었다. 처마끝에는 기와골을 받기 위해 총총한 나무를 얹고서 까래처럼 받치고 4층까지 기와를 입혀 놓았다. 이러한 지붕모양은 탑신의 감실과 더불어 목탑양식의 흔적을 보여준다. 탑의 꼭대기에는 머리 장식으로 복발(覆鉢)만 남아 있다. 운흥동 당간지주의 꼭대기는 6·25 때 파손되었으며 지주와 지면 사이에는 깃대를 받쳤던 둥근 주좌(柱坐)돌이 남아 있다. 이 당간 지주는 높이가 2.6m이며 간결하고 소박하게 만들었다고 안내판에 적혀 있었다.
한때는 동부동오층석탑이 쓰레기소각장으로 사용된 적도 있었다는 사실에 망연해지며 무엇이 우선순위여야 할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모두들 그늘로 향하고 햇살아래 길잡이 김호상선생은 열띤 설명을 하고. 무궁화 나무아래서 무당거미부부를 만난 나는 그들에 열중하고 있었다.

보물제115호인 안동제비원석불의 정확한 명칭은 안동 이천동 석불상(安東泥川洞石佛像) 이다. 아미타여래(阿彌陀如來)로 자료에 의하면 얼굴의 강한 윤곽이나 세부적 조각 양식으로 보아 11세기 무렵에 제작된 불상으로 보여 진다. 석불의 엄청난 규모에 가려 윗쪽의 삼층석탑은 아담하다. 석불과 소나무에 가려 얼핏 보이는 석탑이 어우러져 여름하늘과 함께 좋은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봉정사에 도착하여 출석확인 사진부터 한 장 담았다. 연장은 자주 사용해야 길들여지는 것이라 하여 없는 솜씨에 한번 나섰는데 앵글에 확인된 내가 빠져나온 자리가 왜 그리 넓어보이던지.. 봉정사어귀에서부터 이런저런 작고 고운 녀석들이 발길을 잡는다. 도둑놈의갈고리와 큰도둑놈의갈고리가 나란히 멋진 선글라스를 만들어 내고 있고 칡꽃이 피어나고 이질풀이 무리져 있고...

봉정사를 들어설 때면 언제나 덕휘루를 통과하면서 보이는 대웅전의 모습이 좋다. 한계단 한계단 마다 조금씩 달리 보이는 모습이. 그리고 덕휘루에서 일주문방향으로 내려다 보는 풍광도 그만이다. 일반적으로 누(樓)문은 대부분 이층으로 건축되며 아래층은 사찰의 중정으로 통하는 통로로서의 기능을 하며 윗층은 산사의 전망을 감상하거나 목어(木魚) 운판(雲版) 범종(梵鐘) 법고(法鼓)등을 걸 수 있는 종루(鐘樓)나 고루(鼓樓)의 기능을 겸하기도 한다. 덕휘루(德輝樓)라는 현판이 하나 더 걸려 있어 이 누문의 이름이 덕휘루였음을 알 수 있으나 지금은 만세루로 부르고 있다.
모두들 김호상선생의 해설을 열심히 듣고 있는 동안 경내 이 구석 저 구석을 카메라에 담느라 바빴다.

극락전은 현존하는 우리 나라의 목조건축 중 최고(最古)의 건물이다. 가공석 및 자연석으로 쌓은 기단 위에 정면 3칸 측면 4칸의 맞배지붕과 주심포(柱心包)건물로 고려시대의 건물이지만 통일신라시대의 건축양식을 내포하고 있다.
극락전은 보존을 위하여 해체복원하면서 나름의 학문적인 고증도 있었겠지만 옛 느낌은 사라지고 없었다. 보존과 보수라는 문제에서 우리는 늘 혼란을 겪게 된다. 극락전 앞에 피어나는 접시꽃을 보면서 지금 여기서 옛 느낌을 기대하고 둘러보고 있는 내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대웅전은 현존하는 다포계 건물로는 최고의 건물로서 조선시대 초기의 건축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추녀 끝의 풍경과 지붕곡선 기둥들로 옛 정취를 담고 있었다. 봉정사 소장 괘불은 강희(康熙)49년(1710)에 조성된 것이다. 견본채색(絹本菜色)으로 제작된 것으로 크기는 가로 576cm 세로 731cm 이다. 괘불의 내용은 석가모니가 영취산에서 법화경을 설법할 때의 모임장면을 그린 영산회상도이다. 보관은 대웅전 내에 말아서 함에 넣어 보관하고 있다. 대웅전 앞에는 괘불을 걸 때 사용하는 괘불대가 대웅전으로 오르는 계단의 좌 우에 마련되어 있었다.
괘불 걸고 야단법석(野壇法席)이 마련되는 날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고금당은 불상을 모시는 부속전각이였으나 지금은 요사채로 사용되고 있다. 조선시대 중기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 중의 하나이다. 공포는 익공에 가까운 주심포계이다. 극락전 마당에서 올려다 본 삼성각에는 망자의 원왕생을 기원하는 인등이 반짝이고 있었다.

극락전의 정면에 있는 고려시대 중엽에 조성된 삼층석탑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82호로 지정되어 있다. 좁은 마당에 억지로 끼워 놓은 것 같고 전체적으로 약간 둔한 느낌을 준다. 극락전 오른편 안정사석조여래좌상은 안동댐 수몰로 인하여 안정사가 폐사되어 1973년부터 봉정사에 봉안되어 있다. 민간신앙 탓인지 코며 얼굴 윤곽은 마모가 되어 있었으나 법의의 매듭은 완전한 형태로 남겨져 있었다.

영산암의 영산이란 원래 석가모니가 법화경을 강설하던 인도 왕사성 근방에 있는 영취산을 말한다. 법화경을 설법할 때의 그 모임을 두고 불교에서는 영취산 위의 모임 간단히 영산회상이라 하며 이 모임의 장면을 영산회상도라 하여 법당의 후불탱화로 많이 봉안된다.
영산암의 입구에 해당하는 우화루는 원래는 극락전앞에 있었다고 한다. 우화루(雨花樓)라는 이름은 석가모니가 영취산에서 득도한 후 처음 법화경을 설법하셨을 때 하늘에서 꽃비가 내렸다고 한 것에서 따온 것이다. 우화루 밑을 지나 배롱나무가 꽃피우고 자그마한 석등과 여기저기 참나리가 피어나는 마당에 들어서면 우리 한옥의 아름다움과 다양한 표정을 담고 있는 옛마당의 아름다움에 잠시 멈추어 바라보게 된다.
건물에는 툇마루와 누마루 등이 설치되어 서로 끊어질 듯 이어져 있다. 이러한 것들의 다양함은 혼돈 속에서 새로운 질서를 재창조하는 신비감마저 느끼게 한다. 그러나 영산암도 보수가 진행되고 있어 마당 여기저기 비계파이프가 세워져 있었다. 이사장님과 박성준님과 이곳만이라도 옛 정취 담고 원형 그대로 보존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바람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건축가 승효상의 글을 옮겨본다
" 봉정사가 가지고 있는 서로 다른 세 개의 마당 즉 대웅전 앞의 엄숙한 마당 극락전 앞의 정겨운 마당 영산암의 감정 표현이 강하게 나타난 복잡한 마당을 통하여 한옥의 멋스러움을 마당을 통하여 느끼게 해 준다."

이번 답사의 마지막으로 들린 조탑동오층전탑은 통일신라시대전탑으로 화강암 석재와 벽돌을 혼용해서 만든 특이한 탑이다. 벽돌에 당초문등의 문양이 새겨진 것도 특이하다. 지붕돌에는 안동에 있는 다른 전탑과는 달리 기와가 없다. 남쪽 감실에는 인왕상이 새겨져 있었다. 탑신 중간 중간에는 명아주와 이름모를 들풀들이 터를 잡고 있었다. 안동지구 답사동안 내내 왜? 다른 지역과 달리 전탑이 유독 안동지역에만 많이 세워졌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어떤 이는 안동의 지질구조가 좋은 화강석을 산출하지 못하기 때문에 흙으로 벽돌을 구워 쌓은 전탑이 자리를 잡았을 것이라고도 하고... 궁금증에 대한 해답을 어디에서 찾아야할까?

토요일에 이어 연일 출사와 답사로 지쳐서 집에 돌아와 씻고 바로 쓰러져 잠이 들었다가 깨어나니 12시가 넘은 시각이다. 열어놓은 창을 통해 어디선가 들려오는 귀뚜라미 소리... 아! 오늘이 입추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안치환의 귀뚜라미 노래 가사말처럼
“지금은 매미떼가 하늘을 찌르는 시절 그 소리 걷히고 맑은 가을 하늘이 어린 풀숲위에 내려와 뒤척이고... 귀뚜루루... 귀뚜루루.../보내는 내 타전소리가 누구의 마음 하나 울릴 수 있을까? 누구의 가슴위로 실려갈 수 있을까?”. 이렇게 계절은 소리 없이 또 자리 바꿈을 하고 있나보다.
오랜만에 만난 반가운 얼굴들. 이현숙. 이승원 옆에서 지루하지 않게 말 걸어주고 얘기 들어준 참꽃마리님. 함께한 여러분들이 있어서 행복하고 즐거운 답사였다.

덧붙임
토요일은 백련을 빙자하여 꽃지기들과 소풍을 즐기느라 좀 무리했고 일요일 답사는 예약문화에 익숙하지 않으신 분들 덕분(?)으로 평생초보 실력으로 박성준님 꽁무니 따라 다니느라 엄청 힘들었고....
마음은 즐겁고 행복하지만 몸은 물먹은 솜처럼 가라앉기만하고 이번 주는 사무실 녀석들 휴가 보내고 동분서주하느라 엄청 부산하고.. 숙제 제때에 하지 않는다고 야단들 하실 것 같아서 미리 변명을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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