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5-06-08 00:00
학문의 요람지를 찾아서 (<6월>안강지구 답사 후기)
 글쓴이 : 주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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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마을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알았다면
처음부터 무거운 마음을 지니고 갔을 것을.

배움과 지식의 얄팝함으로 단지 놀러가는 기분으로 출발하였다
경주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느냐를 묻는다면
심하게 부끄러워 하면서 대답하지 못할 나를 알고 있다.
이번 답사는 그 부끄러움의 반성의 일환이다.
혼자 가는 것보다 누군가에게 배움을 얻고자 하는 기분으로 출발하게 되었다.


양동마을은 勿 자 형의 지세를 이루고 있다. 勿자 아랫부분에 획 하나를 더하면 血자가 된다고 하여 일제가 계획한 마을안으로의 철도통고를 우회시켰고 남향의 양동초등학교 건물을 동향으로 돌렸다고 한다. 산 아래는 피지배층이 산 위로는 지배층이 살았으며 부녀자들이 산 위로 오르는 데에 있어서는 종들이 가마를 태워서 다녔기에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여름이되면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시원함이 양반집에 들였으며 겨울이면 햇볕이 쬐어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지대이다. 손씨는 이씨의 외가로서 손 이 양씨의 지금까지도 상호 통혼을 인척관계를 유지하고 마을의 대소사에 협동해오고 있다고 한다.

인상깊었던 것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종손으로 종부로서의 삶은 과히 만만한 것이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무첨당에서 (이는 더럽히지 말라라는 뜻이다) 만난 여강 이씨 종손 이지락씨를 만나게 된다.
그는 이언적의 17대손으로 현대에 살면서 이 곳을 지키고 사는 것의 햇볕과 그늘을 말씀해주셨다.
그가 말한 부분 중 인상깊었던 것은 혼자있는 것 보다 나의 뿌리와 함께 있으니 바람막이가 되어 주더라 그래서 나는 이것을 지키는 삶을 살았소.
라 말하는 것.
그 말은 뿌리라는 것 가족이라는 것.
민족이라는 공동체라 부정되는 지구촌에서
그래서 민족과 뿌리가 필요성에 대한 가장 실리적인 대답인 지도 모른다.
유교가 지배적인 시대의 당당한 위풍과 현대에 들어 과거에 비해 위축되었을지망정 이것을 지키고 있는 것에 대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서백당에서 만난 종부의 모습은 과히 忍 의 모습이었다.
자료에 나타난 것 처럼 서백당을 평화와 행복의 요람이라 볼 수 있다면
그것은 집주인을 닮아서 인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주인이 집을 닮아서인가?
절제와 인내에서 오는 아름다움은 외양에서 오는 아름다움과
차원이 다른 것임을 느낄 수 있었다.

양동마을은 빠른 변화를 지향하는
현대 사회를 비웃기나 한듯
옛것을 지키면서 묵묵히 그리고 흔들림없이 서 있다.
지조 없이 흔들리는 우리 현대사의 모습에서
한 치의 오차없이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은
다름아닌 그들의 핏줄을 이어받은 "사람" 이었고
그 "사람"은 일상적인 모습의 사람이라기 보다는 정신의 계승자이자 문화 유적의 산사람 임이 분명하다.


우리의 답사에 대한 주제를 달아보자면
"학문의 요람지를 찾아서"라고 붙이고 싶다.
답사 내내 대학 때 교양처럼 들었던 동양철학 수업이 내재되어 있는
기억에서 빠져나오느라 좀 버거웠다.
그 방대한 학문의 요람지였던 옥산서원과 독락당
과거부터 현재에까지 많은 학자들을 배출한 양동마을.
그곳에서 기를 받아 좀 더 열심히 공부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이영돈선생님 문화재 읽어내는 솜씨에 감탄만이 절로 나온다.
대학 수업 때 졸음과 함께 찾아오는 강의실의 수업과는 달리
내 눈 앞에 있는 것을 읽어내는 것은 산지식이었다.
그 분은 문화재는 "보는 것"이 아닌 "읽어내는 것" 임을 알려주셨고
자신의 읽어낸 문화재를 충분히 전달하시는 모습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오월을 막 지난 유월의 햇살은
아직은 "따가움"보다는 "따스함"을 지니고 있었다.
경주 안강에서 느꼈던 따스함의 온기는
보이지 않은 양반들이 기운과 그것을 지켜내고자 하는 사람들의 기운이 더해져 이 곳과 내 살결을 덮고 있는 생각이다.
진흥원의 첫 답사는 분명 인상깊었다.
아마도 혼자갔더라면 놓쳤을 많은 것들을 얻게 된 기분이라
돌아오는 길 내 마음속이 든든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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