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5-05-03 00:00
무량의 마음크기(창녕답사)
 글쓴이 : 백태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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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룡사 산문]

‘비가 와도 9시 정시에 창녕으로 떠납니다.’라는 문구가 유적답사 안내에 덧붙여지자 한 해 답사의 안녕을 위해 시산제를 지냈던 제관들의 정성에 의심(?)을 가지게 됐다. 굳은 날씨도 답사 날이면 좋아져야 하는데 올해는 답사 날마다 왜 악천후인지?. 그러나 염려와는 달리 관룡사 입구에 도착하자 하늘이 개이고 햇살이 눈부시게 내리 쬐기 시작했다.

관룡사와 용선대를 오르는 길 좌우에는 봄꽃들이 저마다의 자태를 뽐내고 있었고 꽃말이 꽃받이(꽃바지?) 애기똥풀 금창초 봄맞이꽃 광대수염 애기풀 각시붓꽃 매화말발도리 뱀딸기꽃 싸리꽃 덜꿩나무... 생김새와 빛깔만 봐서는 왜 그런 이름들이 붙여졌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작고 여리고 예쁜 녀석들에게 모두의 눈길이 모아지고 자연히 발걸음은 느려지고...

관룡사 석장승을 지나 오르다 보면 작은 산문(山門)이 올려다 보인다. 키가 큰 사람은 고개를 숙여야 들어갈 수 있을 크기 일주문이라 부르기에는 외형적 크기로는 초라해 보일지 모르지만 경계의 안과 밖을 이렇듯 자연스레 구분지어 주면서 주변의 돌담들과 어울려 눈에 보이는 크기가 아니라 마음으로 무량의 크기로 다가와 자연스레 합장을 하게 한다.
왼쪽 문 돌에 작은 불(佛)자를 새겨 놓음으로써 여기서부터는 부처님 영역임을 조심스레 알려주고 있었다. 좁은 산문을 만든 뜻은 아마도 이 문을 들어서면서 세속의 욕심들을 줄이고 자신을 낮추라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용선대는 대승불교에서 고해(苦海)를 건너 피안(彼岸) 즉 극락에 이르는 배 반야용선(般若龍船)을 말한다. 건너편 바위에서 바라보면 한 척의 든든한 석선(石船)이 푸른 바다를 헤치고 고해(苦海)를 넘어 극락의 세계로 항해하는 모습처럼 보인다. 뱃머리에 앉으신 여래는 중생들을 아우르며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으로 고해를 건너고 계신다.
천년세월을 한 자리에서 중생을 굽어 살피시고 계시는 여래의 시선과 마음으로 까마득한 아래 미욱한 중생들이 사는 마을을 내려다보니 범사(凡事)가 하찮게 여겨진다.

관룡사 대웅전은 특이하게도 비로자나 삼존불을 모시고 있었다. 대웅전은 외관의 소박함과는 달리 안으로 들어서면 화려함으로 가득하다.
부처님 뒤 벽화는 조선시대 조성된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로 우리가 도록등으로 많이 접했던 고려시대 작품에는 미치지 못한 듯하나 완성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었다.
삼존불 위에 닫집과 우물천장 단청 특히 불단은 다양한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불단 조각 하나만으로도 아름다움을 넘어 화려함의 경지에 도달하고 있었다..
관룡사 약사전은 주심포식 건물로 단칸집이다. 고려시대의 석조여래좌상을 모시고 있고 사방 한 칸의 공간에 벽화를 그려 놓았는데 부처님 전각과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산수화와 사군자 포도넝쿨 연꽃등이 시원시원하게 그려져 있었다.
약사전 뜰에는 통일신라말기 양식을 계승한 고려시대로 추정되는 삼층석탑이 서 있었다.

만옥정 공원에는 진흥왕 척경비와 대원군의 척화비가 함께 자리하고 있었고 퇴천(兎川)3층 석탑은 통일신라시대 말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시대상을 잘 반영하고 있는 우수한 탑으로 신라석탑의 변천과정을 밝히는데 귀중한 자료이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31호인 창녕객사는 300-400년전에 건축된 것으로 추정된다. 객사란 외부의 관원이나 외국의 사신이 묵는 숙소이자 임금과 대궐을 상징하는 전패(殿牌)를 모시는 곳으로 왕실의 권위를 반영하는 중요지방공공시설물의 하나였다. 그러나 창녕객사는 여러 번의 이전과 보수로 원래의 형태를 추정하기 힘들고 지금은 객사로서의 권위를 찾아보기 힘들다. 현존하는 최고의 객사 건축물로는 여수의 진남관을 들 수 있다.

창녕박물관은 창녕읍 교리와 계성면 계성리를 비롯한 창녕지역 일대에 분포된 가야(비화가야)고분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토기 마구 무기 장신구등 다양한 출토품을 보여주고 있었고 금제 장신구도 전시되어 있었다.
계성동고분 이전복원관은 고분의 축조형식과 고분의 단면 시상대의 위치 등을 보여주고 있었다.

오후 햇살이 잦아들 무렵 도착한 술정리 동삼층석탑은 무수한 토기풀들의 꽃공양을 받으며 굳건하고 장엄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보고 느끼고 가슴 한가득 감동을 채우는 것으로 석가탑을 능가하는 신라탑의 걸작으로 꼽히는 탑을 만난 행운에 감사할 뿐 무슨 사족을 더하겠는가! 모두들 탑을 만난 행운을 확인이라도 하고 싶은 듯 네잎크로바를 찾느라 분주하고.

공연을 보고 온 다음날이면 늘 내 주변의 사람들은 내게 공연의 감상과 내용을 묻는 것이 아니라 감동의 유효기간을 묻는다. 그럼 나는 “이번엔 한달은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은데”라는 식으로 대답한다.
뒷풀이에서 서변호사님은 처음 술정리동삼층석탑을 만났을 때의 가슴 두근거림과 탑에 매료되었던 기억을 회상하며 오늘 다시 보게 된 기쁨으로 두주 동안은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 거라 말씀하셨다. 좋은 것을 보고 배우고 느낌을 그렇게 표현할 수 있는 서변호사님을 보면서 저 정도는 되어야 유적답사를 다닌다는 얘기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나름의 기준(?)을 정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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