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5-01-17 00:00
새해의 기원(토함산지구 답사)
 글쓴이 : 백태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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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항리사지 석조불상대좌 위사진(http://cafe.naver.com/ptk ) -촬영시기 알수 없음
아래사진 -2005.1.9 오전 촬영

새로운 다짐과 기원을 담고 시작하는 2005년 첫 답사는 모두의 마음들을 시험이라도 하는 듯 겨울의 절정으로 다가왔다. 천군동사지는 황량한 겨울 들녘 찬바람사이로 동/서 양탑만이 이곳이 절터였음을 알려주고 있었고 서탑은 장중한 모습으로 상륜부는 청명한 하늘을 배경으로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계곡건너편에서 올려다 보이는 장항리사지의 동/서 양탑은 올려다보는 모든 이들에게 숭배의 마음이 들만큼 웅장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석조불상대좌는 윗부분과 아랫부분으로 나뉘어져 있고 윗부분은 원형으로 힘있게 그려진 앙련(仰蓮)과 복련(伏蓮)이 조각되어 있고 아랫부분은 팔각형으로 안상(眼象)속에 신장(神將)과 신수를 조각해 놓았는데 그중에 하나인 사자는 근육이 우람하고 힘 있고 기상이 넘치게 표현되어 있었다. 햇살을 받아 자신의 형체를 도드라지게 드러내고 있는 사자는 무섭기보다 재미있는 친구처럼 보이는 것은 아마도 장인이 지니고 있던 순수하고 천진난만함을 그대로 조각에 표현해 놓은 것 같았다. 박물관에 옮겨져 있는 석조불상이 연화대좌 중앙의 제 위치에 계시는 그 장엄한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 보았다. 그런데 미리 찾아본 자료(http://cafe.naver.com/ptk 장항리사지 사진)에서의 사자의 모습과는 촬영시기와 계절적인 조건(사진의 촬영시기가 나와 있지 않아서 칼라사진이 보편화되기 시작한 시점을 넉넉잡아서 30년 이전으로 가정하고 여름과 겨울의 빛의 각도 등)을 감안하더라도 자연현상으로 보기에는 이해가지 않을 만큼 너무나 많이 마모가 되어 있어 안타까웠다. 안타까움으로 뒷걸음질쳐 서탑 쪽으로 향하는데 이사장님이 빛의 각도가 서탑을 사진에 담을 수 있는 좋은 방향이라고 말씀하셔서 셔터를 눌렀는데 뜻밖의 수확(?)을 얻었다. 서변호사님이 인간척도가 되어 서변호사님의 키를 기준으로 서탑의 높이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구도의 사진을 얻었다.

[인간척도(Human scale)란 치수의 단위를 인간의 신체부분을 기준으로 한 것으로 대표적인 것으로 동양의 자(尺)와 서양의 피트(feet) 야드(yard)등이 있다. 자(尺)는 엄지와 검지를 펴서 척도를 재는 형상을 문자화한 것이며 피트(feet)는 발의 뒷부분에서 발톱끝까지 길이를 의미하며 모두 30cm 정도이고 1야드(yard)는 약91cm 정도이며 더블큐빗으로 큐빗(cubit)은 팔꿈치에서 중간손가락끝까지의 길이다. 미터법의 1m는 파리 그리니치천문대를 통과하는 자오선을 포함한 지구둘레의 4천만분의1의 길이로 정의된 것으로 인간과는 관련이 없는 까닭에 주거건축 및 가구같은 인간의 일상생활을 수용하고 있는 부분에서는 지금까지도 인간척도가 사용되고 있다.]

토함산 정상을 오르면서 사람들은 왜 쉬어가며 산아래와 등성이의 풍경들을 즐기면서 오르지 않고 발아래만 보며 전력으로 앞만 보면서 갈까? 오르고 나면 내려가는 일 밖에는 없을텐데? 하는 생각을 했다.(이건 빨리 오를 수 없는 사람들의 위안일지도 모르지만) 토함산 정상에는 억새가 겨울 햇볕을 받아 황금빛으로 일렁이고 발아래 굽이굽이 능선과 멀리 하늘과 바다의 경계를 가르는 수평선이 구름바다 아래에 펼쳐져 있었다.
시산제를 지내며 정갈한 마음으로 절을 올리고 모두의 건강과 발전을 바라는 기원을 담은 축문을 소지(燒紙)하며 한해의 안녕을 빌었다.

석굴암은 신라인들이 남긴 석조미술의 걸작으로 발굴과 중수의 과정에서 여러 가지 오류가 지적되고 있다. 내부에 들어가 마음껏 불상과 보살상들을 볼 수 있었던 예전을 그리워하며 보호를 이유로 유리 밖에서 고개를 이리저리 기웃거렸다.

불국사가 보여주는 정면도는 언제나 청운교/백운교의 모습과 함께 잘 짜여진 배치와 공포 기둥 돌과 나무의 조화가 보여주는 구조적 아름다움에 한참동안이나 넋을 잃게 한다.
손수협선생은 석가탑과 다보탑 중 어느 쪽이 조성할 때 더 힘들었겠냐는 질문을 했다. 모두들 다보탑일거라 대답했으나 다보탑은 탑의 전형에서 벗어난 독창적인 모습이기에 비교대상이 없으므로 나름의 상상력과 창조력으로 가능했겠지만 석가탑은 전형을 따르고 지키면서도 독창적인 무언가를 지니고 있어야만 하기에(미의 기준은 절대적인 가치도 있겠지만 일반적으로는 상대적일 수밖에 없기에) 장인의 고뇌가 더 깊지 않았겠느냐는 견해를 피력했다. 회랑의 열주들은 질서속의 구조미를 보여주고 관음전 담장 너머로 보이는 지붕과 지붕들 그 사이로 솟아 있는 다보탑 탑신 상부구조는 그대로 액자 속에 담고 싶었다.
나한전 뒤뜰과 나무아래 담장의 기와 위. 통행할 수 있는 부분을 제외하고는 어느 곳 할 것 없이 촘촘히 가지런히 돌탑들이 놓여 있었다. 무너져 내릴 듯 어설퍼 보이지만 간절한 소망을 담고 있어서인지 겨울바람에도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나도 돌 하나를 집어서 누군가가 쌓아 놓은 돌탑위에 조심스레 올려놓으면서 내가 사랑하는 주위의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그리고 많이 웃기를 소망했다.

뒷풀이에서는 따뜻한 실내로 와서 곡주들을 한잔씩 하고 난 모두의 얼굴빛은 보기 좋을 만큼 발그레해지고 손수협선생의 피리소리는 꿈결처럼 들려오고 서변호사님의 대금가락은 장녹수의 덧없는 야망과 삶을 굽이굽이 풀어내고 있었다.


덧붙임: 답사기를 적을 때마다 매번 연애편지를 보내는 마음으로 가슴 두근거리며 설레이게 된다. 그러나 진흥원식구들은 누구도 내게 답장(?)을 보내지 않는다. 외사랑을 하고 있나보다 나는. 그래서 조금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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