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4-02-04 00:00
138회 유적답사기 (이상호님의 글)
 글쓴이 : 홈지기
조회 : 8,781   추천 : 227   비추천 : 0  
나와 내 아내는 절에 자주 가는편은 아니지만 절에 가서 예불드리는
법도 모르고 그저 대웅전 부처님전에 삼배의 절을 올리고 나면 마음은
그렇게 편안할수 없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특히 저녁나절 해가 산마루에 걸릴때쯤의 고저넉한 山寺는 더욱 그랬다.

그러면서 일주문 사천왕상 금강문 탑 범종 운판 목어사찰의 구조
부처님등 寺刹에 담긴 의미에 대해 궁금증이 생기면서 우리 문화에 대해
사랑하게 되었고 좀더 깊이 있게 알고자 갈망 해왔었다.

그러면서도 유적지를 갈때는 이름난 사찰 같은곳을 그저 관광삼아 휙
둘러보고는 "볼거 없네"라 하고 돌아왔던 기억들이 얼마나 부끄러운지
모르겠다.

문화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知人에게서 "신라 문화진흥원"에 대해 이야기
들었을때는 너무 기뻤었고 관심만 갖고 있었지 찾아볼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부끄럼이 들었었다.

지난 6월 아내와 나는 흥분된 마음으로 유적답사에 처음 참가하기 위해
"신라 문화진흥원" 방문했고 유적답사를 마치고 대구로 돌아올때 그
마음은 너무 좋았었다.

직접 답사를 통한 현장체험과 상세한 설명을 들어면서 "신라 문화진흥원"
을 좀더 빨리 알았었다면 하는 아쉬움을 절실히 느끼곤 했다.

나 같이 문화에 관심이 있지만 자기 혼자 어떻게 할줄 모르는 초보자에게
공부할수 있는 길을 열어 주고 신라 문화유적을 지켜 가려고 헌신하시는
"신라 문화 진흥원"의 김 주락 이사장님전문위원을 비롯한 종사자 분들께
늦었지만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이젠 우리 부부는 유적답사 가는 매월 첫째주 일요일이 너무나 기다려
진다.

그리고 유적답사에 오시는 분들도 전부 보고 싶고 . . .
(비롯 깊이 알지는 못하지만 동질감에서 인지 )
이글을 올리는 지금도 11월 유적 답사가 기다려진다.



* * *



〈 138회 문화 유적 답사기 〉
137회 문화유적 답사를 가지 못했던 아쉬움 때문인지 이번 답사를 너무
기다려왔던 터라 유명한 유적지든 아니든 그건 상관이 없이 그냥 답사
가는게 좋았고 또 문화유적 답사에 오는 분들을 만나는게 좋아 빨리 가고 싶었다.


진흥원에 도착 하니 얼굴이 맑으신 분이 먼저 인사를 하신다.
그 분이 이번 답사 指導를 맡으신 최 민희 전문위원 이셨다.
최 민희 선생님의 답사 안내로
제일 먼저 간곳이 금장대 암각화 였다.
칠포리 암각화때도 마찬가지 느낌이었지만 금장대 암각화의 느낌은
관리가 허술하다는 느낌이 우선 들었고 관심없는 일반인들은 옆에 두고도 알수없겠구나 하는 생각을 우선하면서 고고학을 연구하시는 분들의 노력이 상당히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갖게한다.

둘째 답사지는 진덕여왕릉 이었다.
처음가는 곳이지만 나지막한 산이 산세가 안정되고 좋아보였다.
차에서 내려 약 15분 산길을 따라 올라가니 왕릉 치고는 크지도
작지도 않지만 여왕의 무덤인듯 아름다운 왕릉이었다.

왕릉의 축조 방법 호석에 새겨진 12지간의 방위 좌향 등
최 선생님의 상세한 설명이 나 같은 초보자에게는 너무 많은 도움이
되었던 시간이었다.

진덕여왕릉을 뒤로하고 간곳이 손순 유허비 오류등나무를 답사
하면서 신라의 많은 전설에 대해서 무척이나 흥미를 느껴 일연스님이 지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전설인지 실제인지는 모르겠으나 삼국유사에 실린 전설의 현장과 그 역사적인 배경을 공부해 보는것도 좋겠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대구에 돌아와 서점에 들러 이하석의 "삼국유사의 현장기행" 이라는
책을 사보고 더욱 신라유적에 자꾸 빠져 더는 것 같다.
관심있는 분께도 권해보고 싶은 책이라 생각한다.

마지막 답사지가 용담정으로 경주에 관광은 오지만 정말 오기쉽지 않은
중요한 곳을 와 보았다는 자랑스런 생각이 들면서도 보통 일반인들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는 최 재우가 경주 사람인지 동학의 발상지가 경주인지도 몰랐으니까 한편 부끄럽기도 했다.
보존이 잘되어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하지만 용담정사에 사용한
기와에 동학을 나타내는 문양( 문양 이름은 모르겠음)의 수막새로 되어
있지만 수막새가 부족 했는지 사찰에 사용하는 "만"자의 문양과
신라시대의 연화문 수막새가 다수 섞여 있었는게 영 마음을 아퍼게 한다.

천도교의 성지인 용담정에 다른 문양이 섞여 있는 경우를 보고
우리 유적중에 잘못 된 것이 있으면 공사를 한 사람만의 탓으로 돌릴게
아니라 우리가 고쳐 나가야할 과제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2003년 10월 19일
글 올린이 대구에서 이 상호

 
   
 

하이게이밍
클럽골드카지노
top카지노
탑카지노
안전놀이터주소
온라인카지노
우리카지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