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4-08-26 00:00
천지에 서다(고구려유적.백두산야생화답사)
 글쓴이 : 백태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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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3 하루
떠나는 일은 언제나 기대와 설레임으로 가득하다. 떠나기 위해 짐을 꾸리는 순간 이미 마음은 여행지를 향해 먼저 출발한 후다. 모든 일에는 그 의미가 있고 의미가 있어 더 소중한 것이다. 이번 답사여행은 내가 나에게 주는 졸업선물이다. 의욕만큼 따라 주지 않은 건강과 시간으로 인해 다소 힘겹기도 했지만 나는 내게 주어진 숙제를 해냈다. 누구나가 그렇겠지만 때론 나 자신이 자신을 어쩔 수 없이 못마땅할 때도 있지만 가끔씩은 나 자신이 기특해 보일 때도 있다. 지금이 바로 그때이다.
심양이 내가 처음 보여준 모습은 타워크레인이였다. 건설현장의 크레인들은 중국의 건설경기를 짐작하게 했다. 심양 한 도시의 건설규모가 이 정도면 중국전체는 도대체 얼마일까? 중국의 건설열기가 우리경제에 미치는 영향들을 생각하며 신축중인 아파트 업무용건물들을 보면서 이 넓은 대륙에 왜 고층건물을 지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심양의 고궁과 북릉을 둘러 보면서 민족성이란 과연 뭘까? 무엇이 이렇게 다른 문화를 만들어 낼까? 하는 생각을 했다. 고궁의 공간들은 소림사무술로 무장한 이들만이 이동할 수 있을 정도의 견고함과 높이를 자랑하는 담들로 확연히 구획되어 있었다. 우리네 공간들은 자연과 연못 내밈과 감춤 등으로 자연스런 구획이지만 심양의 고궁은 너무 인위적이여서 낯설기만 했다. 심양의 고층건물들과 마찬가지로 궁궐들도 낙뢰에 자유롭지 못해 건물의 상층은 모두 피뢰침들이였다. 주거와 취사가 한 공간에서 이루어지고 있음도 다름 중의 하나였다. 북릉을 오가는 代步車는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고 축전지를 이용하고 있어서 흥미로웠다.
심양에서 집안까지의 버스여행은 중국시간으로 다음날 1:30에야 끝이 났다. 서로의 인내심들을 시험하며 비포장 산길을 돌고 돌았다. 심양도 시가지와 연결된 구간을 벗어나면 지난여름의 필리핀처럼 60년대 우리나라 풍경처럼 개발과는 거리가 멀고 옥수수밭들만 끝없이 펼쳐져 있고 가난이 누덕누덕 널려져 있었다.
중국여행에 대한 편의시설과 숙박시설에 대해서 사전에 미리 최악을 생각하고 온 탓인지 기대치보다는 나은 환경이였다.

8.14 이틀
광개토왕릉과 광개토왕비
훌륭한 조상이 있으면 그에 걸맞은 후손이 있어야만 조상의 업적이 더욱 빛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내 것이라고 주장하고 고함쳐 보지만 내가 어쩔 수 없는 남의 땅에 남의 것이 되어 마음껏 볼 수 도 없고 내 뜻대로 이름 부를 수도 없고.
유리상자안에 놓인 광개토왕비는 호태왕비석으로 이름 불리워지고 있고 유리외부에서는 그 글자조차 판독하기 어려웠다. 왕릉은 원형이 훼손되어 있고.
다음에 들른 장군총은 그나마 원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무덤의 붕괴를 방지하기 위하여 사면에 세워놓은 판석들은 옛사람들의 지혜를 보는 듯했다.
먼저 내려와 사람들을 기다리며 서 있다 발 밑에서 네잎크로바를 발견했다. 살면서 애써 찾아도 한번도 찾아 볼 수 없었는데 그냥 내 발아래 있었다. 이번 답사가 내게 많은 것을 가져다 줄 것 같아 기뻤다.
오회분도 마찬가지로 관람이 어려웠다. 벽화가 발견된 분묘 부근에서 설명을 듣고 있는데 이번에도 네잎 크로바가 보였다. 무슨 이런 행운이!. 옆에서 이사장님이 세잎크로바는 일상의 행복이라고 네잎크로바의 행운에 너무 기뻐 말라고 하신다.
집안박물관은 중국역사학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고구려 역사들이 기술되어 있었다.
압록강은 황토빛 물줄기로 흐르고 강 건너 우리네 사람들은 서로 소리쳐 의사소통이 가능한데 올 수도 갈 수도 없는 우리 땅. 손에 잡힐 듯 북한 땅의 강냉이는 익어 가는데 압록강은 제 물결대로만 움직여 간다. 환도산성은 지리적인 요새로서의 이점을 충분히 이용하고 있었고 적을 이겨낸 조상들의 함성이 들리는 듯 했다. 국내성 유적은 천년의 세월을 견디어 왔으나 누가 얘기하지 않으면 그냥 제방의 한부분으로 여겨질 것 같았다.
압록강가에서 먹는 저녁식사. 불고기라 하여 기대하였지만 같은 민족의 음식이라 해도 지역과 생활양식이 바뀌면 맛의 기준이 달라지는 것 같았다. 불고기는 우리식의 양념이 아니라 특유의 향신료가 들어가 있었고 전체적으로 간이 너무 짰다. 즉석에서 반죽하여 국수를 뽑아 김치국물에 말아 주는 강냉이국수. 국수뽑는 과정을 신기하게 지켜 보았다.
통구로 향하는 버스는 북으로 북으로 달리고 하늘은 통째로 쏟아져 차창으로 들어왔다. 북두칠성은 우리를 따라 오고 은하수는 흐르고. 참 오랜만에 내별을 오래도록 보았다. 초등학교 자연시간에 자신의 별을 하나씩 정하라는 선생님 말씀에 나는 북두칠성의 손잡이쪽 여섯 번째 별을 내별로 하였다. 다른 별에 비해 두드러져 빛나진 않지만 그 자리에 꼭 있어야만 북두칠성을 만들 수 있듯이 내가 선 곳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 시절엔. 별똥별이 길게 떨어지고 소원을 빌었다. 내 바람들이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통구역은 그 규모와는 달리 전통적인 중국화장실을 지니고 있었다.

8.15 사흘
통구에서 이도백하까지 기차를 타고 이동하였다. 흔들리고 흔들려 가면서 새벽을 맞이하였다. 미명의 광활한 들판은 신선한 충격이였다. 새벽녘에 도착한 백두산 아랫마을 이도백하. 내 민족이 발 디디고 사는 땅이라지만 낯설기는 마찬가지다.
“광복절을 만주벌판에서 맞이하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광복절이다. 그 시절 이곳의 조상들은 얼마나 벅찬 가슴으로 오늘을 맞이했을까 생각하니 크게 소리내어 애국가를 불러야 할 것만 같다. 백두산어귀의 자연박물관에서 어린시절의 방학숙제였던 식물채집과 곤충채집 표본들을 만났다. 바랭이풀이 있고 매미와 잠자리가 있고...
백두산을 만나러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네시간 걸려 도착한 왕지는 가을 들꽃으로 가득했고 저마다의 이력과 이름들이 있건만 그들의 이름을 일일이 찾아 불러 줄 수 없었기에 그들은 그냥 가을 고원을 수놓고 있는 꽃들일 뿐이였다. 금강대협곡은 지진으로 인해 생긴 단층지구로 지금도 매년 5cm씩 융기하고 있다 한다. 금강대협곡의 관람로 설치에서 중국인들의 자연친화력을 볼 수 있었다. 나무계단을 만들고 계단의 한가운데 나무가 자라고 있으면 나무를 자르는 것이 아니라 그 나무를 그대로 두고 사람들이 비껴가게끔 했다. 고산화원은 이미 꽃 지고 난 뒤라 꽃이 피었었다는 흔적만 가득했다. 못내 아쉬운 마음을 단체사진으로 달래보고. 백두산을 물들이는 보랏빛의 하늘거림들. 들꽃에게 이름을 돌려주기 위하여 왕지로 되돌아와 못다 본 야생화들을 보고서 백두산(서파)을 떠났다.
며칠만에 겨우 세상과 소통을 하였다. 울엄마는 건강하고 사무실은 정말로 별일 없다고 한다. 내가 없어도.

8.16 나흘
천지와 만나다. 천지를 만나러 가는 길 내나라 내민족 내땅이라는 의식은 참으로 대단했다. 장백폭포의 장관과 풍경들을 못보고 먼저 가신 조상들을 생각하며 안타까워하는 후손들. 달문으로 하여 천지를 만나기로 했다. 여기까지 와서 천지에 손이라도 담궈봐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들로. 하지만 처음부터 만만치 않았다. 한시간이 소요된다는 말에 “빨리걸어서? 아니면 천천이 걸어서?”냐고 묻자 가이드는 천연덕스럽게 대답한다. “빨리도 천천히도 한시간입니다” 이해가지 않는 대답이였지만 하산할 때는 그 말뜻이 이해가 되었다. 장백폭포에서 시작한 계단은 아치구조물로 축조되어 있었고 그 가파름을 무기로 나를 시험하기 시작했다. 포기하라고. 너는 절대로 나를 오를 수 없다고. 그렇지만 여기까지 와서 나도 포기할 수 없었다. 저만큼 계단이 끝나고 고원이 보이자 내가 그렇게 기특할 수가 없었다. 천지는 온전히 우리를 맞이했고 천지라고 쓰인 팻말 앞에서 사진을 찍는 것으로 그 가슴 벅참을 대신했다.
천지를 하산하고도 못내 미진하여 짚을 타고 천문대쪽으로 천지를 만나러 갔다. 아마 그렇지 않았다면 후회했을 것이다. 두메양귀비군락과 구름능선을 지나 도착한 천지는 그 위용을 자랑하며 자태를 뽐내며 당당히 서 우리를 맞이하였다. 달문에서처럼 발 닿고 손 담글 수는 없지만 천지가 보여주는 모든 것을 내가 가진 모국어로 다 표현할 수 없음이 안타까울 뿐. 천지에서 맞는 일몰은 뭐라 형용할 수 없을 정도의 감동이였다. 천지를 내려와 이 느낌들을 나 혼자만 간직하기 벅차 온전히 표현할 수는 없었지만 모두에게 들려 주었다. 내가 찾은 네잎크로바가 천지를 온전히 만날 수 있는 행운을 가져다 준 것이라 생각했다.

8.17 닷새
욕심이 과했는지 두 번씩이나 아낌없이 자신을 드러낸 천지는 일출을 허락치 않았다. 산문을 향하는 도로는 폐쇄되고 소천지에서 여명을 맞이했다. 또 다른 행운이였다. 빛의 미학. 햇살은 조금씩 세상의 모든 만물들을 소리 없이 깨우고 부스스 일어나는 물상들의 변화는 감동 그 자체였다. 호수로 내려앉은 하늘과 산과 나무들. 그리고 들꽃들. 새벽의 소천지는 작은 우주였다. 최인환선생님 이교일선생님. 하늘과 자연과 들꽃들과 삶에 대한 얘기를 나눈 그 소요(逍遙)가 주는 잔잔한 평온이 그리워진다. 소천지입구의 약왕전에서 우는 토끼를 보았다. 처음에는 다람쥐인가 했는데 꼬리가 없었다. 마알간 눈으로 풀을 뜯으며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용두레 우물가와 일송정은 노래로만 불리우고 이동하는 버스안에서 아이들은 모두 지쳐있고 어른들은 활기가 넘쳐 자신들이 학창시절에 불렀던 노래들을 목청껏 부르고 두만강이 있고 해뜨는 동해바다와 광활한 만주벌판이 있고....
옛 대성중학교에서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기를 소망한 윤동주시인을 만나고. 두만강에서 북녘과의 경계를 만났다. 두문. 다리하나만 건너면 내나라 내 민족이 살고 있는 땅인데 이방인처럼 멀리서 두리번거리만 한다.
인간은 자연에게는 필요악이다. 자신들의 삶을 위하여 반달곰들을 잔인하게 사육시키고 있었다. 발 맛사지로 피로를 풀고 연변을 떠나 심양으로 되돌아왔다. 심양의 밤은 깊어 2시다. 이제 이 여정을 마무리해야 하는 시간이다. 일상으로 되돌아가야 하는 이 시점이 못내 아쉽다.

우리는 나이 들어서도 철 안든 귀여운 할머니로 늙어갈거라는 내 파트너 이현숙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는 워즈워스의 명언을 실감하게 하는 승원이. 우리가 자연스레 사용하는 명사의 정의가 궁금하다면 녀석에게 물어보면 명쾌한 해답을 줄 것이다. 듬직하고 자상한 준원이 재원이. 자그마한 일에도 아이다운 호기심으로 궁금해하던 사랑스럽고 예쁜 유선이. 누나들이 있어 친구들 중에서 혼자만 아직 라면을 끓일 줄 모른다고 살짝 고백(?)한 현석이. 행복한 시간들을 함께 한 여러분들. 그들이 있어서 유쾌하고 즐거운 답사였고. 문득문득 모두들 많이 보고 싶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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