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4-06-29 00:00
신라문화진흥원을 다니며...부탁하신글 강동초등학교 6학년 2반 서정웅
 글쓴이 : 서정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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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문화진흥원을 다니며...

내 고장 경주에는 옛날 신라 천년을 지켜온 수도로써 찬란한 문화를 꽃피운 곳이기 때문에 훌륭한 문화재들이 많이 있다. 어느 날 어머니께서 ‘신라 문화진흥원’이라는 곳이 있어 조상들이 남긴 훌륭한 문화 유적을 답사 시켜주는 곳이 있다고 하셔서 귀가 솔깃했다. 가족들과 많은 유적들을 다녀 보았지만 자세하게 해주시는 설명을 들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내 또래 친구들과 같이 가니 좀 색다르고 더욱 재미있었다.
이제까지 신라 문화 진흥원에서 답사 갔던 곳은 많았지만 그 중에서도 경주시내에 있는 첨성대-계림-월성-안압지 답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첨성대는 반월성 안에 있는 동양에 현존하는 천문대로 제일 오래된 것이다. 높이는 9.1미터이고 그 모양은 호리병 모양이었다. 그런데 첨성대가 주목받고 있는 것은 첨성대를 쌓는데 쓴 돌의 수는 366개이라서 윤달은 날의 수와 같고 기단에 사용된 돌은 12개로 달수와 같다. 첨성대 중앙의 정사각형의 구멍에 사다리를 걸쳐놓고 첨성대 안으로 들어가 하늘을 관찰했던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뛰어나다고 생각했다. 첨성대를 지나 얼마쯤 걸어서 계림에 도착했는데 계림은 원래 ‘시림’이었는데 김씨의 시조인 김알지가 태어났다고 해서 계림이라고 이름이 바뀌었다. 난 김씨가 아니지만 김씨의 시조가 훌륭한 사람이라는 것에 감탄했다.
계림에서 조금 산길을 걸어가면 반월성이 나온다. 반월성은 반달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성에 관한 이야기가 있는데 석탈해(훗날 신라 4대 임금)가 그 반달처럼 생긴 땅이 탐이 나서 저녁이 몰래 가 숯과 쇳조각 등을 파묻고 나서 이튿날 그 땅 주인인 호공 에게 가서 자기네 땅이니 돌려 달라고 했다. 실랑이가 벌여진 두 사람은 재판을 받자고 했는데 석탈해가 말하길
“원래 우리 조상의 땅인데 여행을 다녀오니 이 사람이 와서 살고 있었습니다. 우리 집안은 대장장이 집안이기 때문에 주위를 파보면 숯과 쇳조각 등이 있을 것입니다.”
라고 해서 파보니 정말 숯과 쇳조각이 나왔다. 그래서 그 땅을 석탈해가 차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신라의 별궁 안압지를 견학했는데 안압지는 귀한 손님이나 경사가 있을 때 연회를 베풀던 장소로 건물 앞에 커다란 연못이 있다. 더운 날 연못을 바라보니 시원하게 느껴졌다. 유적답사를 마치면서 계림 반월성 안압지가 지금은 비록 도로 때문에 나뉘어져 있다고 하지만 그 옛날 신라시대 임금과 신하들이 이곳에서 나라를 걱정하고 백성을 생각하며 천 년의 세월 동안을 지켜온 자리라는 생각에 다시 한번 서라벌에 살고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다.
남들이 쉬는 일요일을 무료하게 보낼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남은 시간동안 더욱 열심히 문화유적 답사를 다녀서 좋은 경험을 통해 6학년 한해를 보람 있게 보낼 수 있도록 할 것이다.
강동초등학교 6학년 2반 서정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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