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4-05-10 00:00
가슴따스한봄날하루(군위.영천답사)
 글쓴이 : 백태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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꽉 짜인 일상과 논문에 대한 부담감에서 잠시나마 비켜나고 싶어서 답사길에 올랐다. 민준민규 두 형제가 전해주는 순수했던 시절의 얘기들로 즐거워하며 인각사에 도착했다. 인각사를 지나는 개울은 어린시절 맨발로 첨벙거리던 남천의 그 맑은 냇가 그대로였다. 답사 왔다는 사실을 깡그리 잊어버리고 맑은 소에 발 담그고 싶어졌다. 인각사에는 작고 여린 청개구리 한 마리가 탑신에 몸을 맡긴 채 봄 햇살아래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역사는 흘러 흔적을 남기지만 역사의 중심과 변방은 언제나 어디에서나 그 차이를 극명히 드러내고 있다. 김호상선생님의 설명처럼 지금까지의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의 역사속에서 평가가치처럼 삼국유사를 집필했던 일연선사와 인각사도 역사의 한곁으로 비켜나 있었다. 일주문의 방향과 전각의 위치를 짐작으로만 여기고 절이름을 알리는 현판하나 없이 부도비는 원형을 훼손당한 채로 뒤곁 한구석에 서 있었다. 그나마 고은 시인의 시비 하나가 위안을 주고 있었다.
『일연찬가
오라 華山 기슭 麟角寺로 오라
하늘아래 두갈래 세갈래 찢어진 겨레 아니라 오직 한겨레임을
옛 조선 단군으로부터 내려오는 거룩한 한 나라였음을 우리 자손 만대에
소식 전한 그이 보각국사 일연선사를 만나 뵈러 여기 인각사로 오라
아 여든살의 그이 촛불 밝혀 한자 한자 새겨간 그 찬란한 혼 만나 뵈러
여기 인각사로 오라.
오라 渭川 냇가 인각사로 오라 통곡의 때 이 나라 온통 짓 밟혀 어디나 죽음이였을 때
다시 삶의 길 열어 푸르른 내일로 가는 길 열어 정든 땅 방방곡곡에
한 송이 연꽃 들어올린 그이 보각국존 일연선사를 가슴에 품고 여기 인각사로 오라
아 여든살 그이 촛불 밝혀 한자 한자 새겨간 그 찬란한 혼 만나 뵈러
여기 인각사로 오라.』

영천화남동 석불좌상은 눈도 귀도 마모되어 있었다. 역사를 보는 우리는 석상이 원형대로 보존되기를 원하지만 앞을 못 보는 이에게는 광명을 볼 수 있다는 희망을 들을 수 없는 이에게는 세상의 소리를 느낄 수 있는 기대를 아들을 바라는 아낙네들에게는 득남의 절실한 소망을 줄 수 있었다면 그것이 더 많은 효용가치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나무와 흙만으로 또 치장없이 재료가 가지는 자체의 모습만으로도 저런 간결한 아름다움과 절제된 멋을 전해줄 수 있음에 새삼 감탄하며 장식은 아름다움을 줄 수 있지만 오래오래 감동을 줄 수는 없다는 생각을 했다.
작은 것 하나 하나가 모여 전체를 완성하듯 작은 배려와 관심들이 건축물자체가 지니는 의미를 더해 줄수도 있는데 역할에만 충실(?)하게 위치를 잡아 달려있는 영산전의 외등은 옥의 티를 만들어 내며 안타까움을 느끼게 했다. 영산전에서 누구나 자신을 닮은 한 분의 나한을 만날 수 있다는 어느 책에서 읽은 구절이 생각나서 오백스물여섯분의 표정 하나하나를 유심히 살펴 보았다.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하고.
몇 세대가 지나고 나면 지금의 신축전각과 석축도 나름의 존재이유로 역사적 가치로 설명되어지겠지만 신.구의 어울림은 왠지 모를 어색함과 거부감으로 다가왔다.
영천화남동 한광사의 석축도 그러하지만 자연 그대로의 경사면을 이용하여 수목을 심어서 처리하면 될텐데 거대한 구조물을 만들어 위압감을 느끼게 해야 할까? 종교적인 신성함을 조성하기 위해서라면 굳이 직각의 석축이 아니라도 될텐데 하는 생각.

신흥사에서 만난 금낭화는 비를 만나 물망울을 하나씩 떨어뜨리며 금새라도 청아하고 맑은 소리하나를 들려줄 것 만 같았다.
청제비를 보러가는 길에는 찔레가 새순들을 내밀고 있었다. 오월의 달 밝은 밤 온 천지를 가슴 아린 향기로 하얗게 물들일 찔레꽃을 그려보면서 입가에 연한 미소를 지으며 어린시절의 추억 한자락을 끄집어 내어 찔레순 하나를 꺽어 껍질을 벗겨 한입 성큼 베어 물었다.아무런 맛이 없었다. 맛있다 맛없다의 문제가 아니라 無맛이였다. 그시절의 기억으로는 달큰한 봄맛이였는데... ... 아마도 내 미각을 담당하는 미뢰가 많이 퇴화를 했나보다. 어른들이 “옛날 그맛이 아니다 ”하시는 말씀은 물론 살아오시면서 더 맛난 음식들을 많이 드신 탓도 있겠지만 인간의 미뢰는 20대를 기준으로 점점 나이에 따라서 줄어들게 됨으로서 맛에 대해서 둔해진다는 생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이다

일기예보는 비교적 정확한 확률을 자랑하고 답사일정을 마칠 때를 맞추어 비가 내렸다.
쏟아지는 비는 “비오는 날은 만나는 것마다 비가 된다”는 시 귀절을 떠올리게 했다. 유쾌하고 가슴 따스한 봄날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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