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8-01-04 11:26
'석가탑을 백제석공 아사달이 만들었다'는 말은 엉터리다
 글쓴이 : 김주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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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탑을 백제석공 아사달이 만들었다'는 말은 엉터리다

이글을 쓰게 된 계기는 방송에서조차 아무런 부연설명 없이 마치 역사적 사실처럼 석가탑, 다보탑을 백제석공 아사달이 만들었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보고 누군가는 한번쯤 잘못된 것이라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아사달이라는 인물은 역사적 인물이 아님은 물론이고 전설상의 인물도 아니다. 현진건의 창작인물일 뿐이다.

불국사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에는 없고 삼국유사 효선편에 나온다.

삼국유사 효선편‘대성 효 2세 부모 신문대’(대성이 현생과 전세 2세의 부모에게 효를 행하다 신문왕대)조에 나오는 불국사 시창(始創) 연대는 경덕왕 10년(천보 10년 - 천보는 당 현종대의 연호이고 개시시기가 경덕왕 등극시기와 같은 서기 742년이다) 서기 751년이다. 백제가 서기 660년에 멸망하였으므로 서기 751년은 백제가 멸망한지 90년이나 지난 시기이다. 그러므로 백제석공이란 말은 명백히 맞지 않는 말이다.

무영탑이라는 말도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나오지 않는다. 무영탑이라는 말은 불국사 절의기록(寺誌)인‘불국사 사적’에 처음 등장한다.(현재 전하는 불국사 사적은 1708년 간행된 것이다) 무영탑 전설에 관한 기록도 역시 불국사 절의기록인‘불국사 고금창기’에 처음 등장한다.(현재 전하는 불국사 고금창기는 필사본으로 1740년 쓴 것이다)

위 불국사 고금창기의 무영탑 전설기록에도 아사달이란 이름은 나오지 않고 무영탑(석가탑)을 만들 때 장공이 당나라에서 온 사람이고 그의 누이 이름이 아사녀라고 되어있다.

현재 일반적으로 알려진 무영탑 전설 - 무영탑을 만든 사람은 아사달이고 그의 처 아사녀가 남편을 만나러왔다가 공사중이라 만나지 못하고 탑이 완공되면 영지에 그림자가 비친다하여 남편을 만나기 위해 영지에 가서 탑이 완공되어 그림자가 비치길 기다렸는데 끝내 탑 그림자는 비치지 않았다 - 은 현진건의 무영탑이라는 소설(1938 ~ 1939 동아일보에 연재)에 나오는 이야기다. 즉 아사달이라는 인물과 아사녀가 그의 처라는 것은 현진건의 창작이다.

그리고 현진건의 무영탑 소설을 보아도‘신라 경덕왕 시절’이라고 시작하고 있고 아사달은 부여사람으로 나오고‘부여는 신라땅이 아닌가베’라는 대사도 나온다. 따라서 현진건도 석가탑이 백제 멸망 후 만들어진 것임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다.

탑의 양식도 당나라 탑의 유풍이나 백제 탑의 유풍은 찾아볼 수 없는 전형적인 신라 탑 양식이다.

그런데 왜 백제석공 아사달이라는 이야기가 퍼졌을까.

이는 일반인들이, 현진건의 무영탑 소설 속 창작인물인 아사달 이야기와 삼국유사 탑상편 황룡사 9층탑조의 백제장인 아비지 초청 이야기를 혼합 인식하여 백제석공 아사달이라는 이야기가 역사적 사실이거나 실제 예전부터 전해오는 전설인 것처럼 착각을 일으켰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삼국유사 기이편 고조선조에 나오는 단군왕검이 아사달에 도읍하여 고조선을 세웠다는 이야기가 아사달이라는 이름이 허구가 아닌 것처럼 느끼게 만든 것도 착각의 한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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