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0-11-18 12:11
"견보탑품(見寶塔品)"을 다시 읽다가...- 서보석
 글쓴이 : 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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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묘법연화경 제11 견보탑품의 요약

A. (석가여래가 사바세계의 기사굴산에서 법화경을 설하시는) 그때에 부처님 앞에 높이 500 유순, 가로세로 250 유순인 칠보탑이 땅에서 솟아올라 공중에 머물렀다.

① 그 탑은 갖가지 보물로 잘 꾸며졌는데, 난순(欄楯)이 5천이고 감실(龕室) 이 천만이며 수많은 깃발로 아름답게 꾸미고 보배영락을 드리우고 보배방 울 만억을 그 위에 매달고...

② 그리고 그 칠보탑(七寶塔) 중에서 큰소리로 찬탄하셨다.

"거룩하고도 거룩하십니다. 석가모니 세존이시여, 평등하고 큰 지혜로써 보 살을 가르치는 법이며 부처님께서 늘 마음에 두고 보호하시는 묘법화경을 대중들에게 설하시는데,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석가모니 세존께서 말씀하 신 바는 모두 다 진실합니다."

B. 이때 대요설(大樂說) 보살이 "어떤 인연으로 이 칠보탑이 땅에서 솟아나오 고, 또 그 가운데서 이런 음성이 나오는가" 부처님께 물었다.

"이 보탑중에는 여래의 전신(全身)이 있다. 먼 과거에 동방(東方)으로 한량 없는 세계에 “보정(寶淨)'이라는 나라가 있었는데, 그 중에 '다보(多寶)'라는 부처님이 계셨다. 그 부처님이 서원하기를 나중에 성불하면 열반 후에라도 법화경을 설하는 곳이 있으면 어디에라도 나의 탑이 그 앞에 솟아나서 증 명하고 찬탄하리라 하였다."

C. 대요설보살이 "저희들은 이 부처님의 몸(全身)을 보고 싶습니다"라고 하니 부처님께서 "이 다보부처님은 깊고 중대한 서원이 있는데, '만일 나의 보탑 이 법화경을 들으려고 부처님들 앞에 나올 때에 나의 몸을 사부대중이 보 려고 하면, 그 부처님의 분신으로 시방세계에서 설법하는 모든 부처님들이 한 곳으로 모였을 때라야 내 몸을 나타내리라'하는 것이었다. 이제 나의 분 신부처님들을 이곳에 모으겠다" 하셨다.

D. 부처님이 백호(白毫)에서 한 줄기 빛을 놓으시니 동방의 오백만억 국토의 여러 부처님들이 각 그 나라에서 설법하고 계시는 것이 보였고, 남서북방과 사유상하(四維上下)도 같았다.  그때 그 시방세계의 각 부처님들은 각각의 보살들에게 "나는 지금 석가모 니 부처님이 계시는 사바세계로 갈 것이며, 또 다보여래의 보탑에도 공 양할 것이다"고 하였다.  이때 사바세계는 청정하게 변하여... 하였다.

E. 시방세계의 각 부처님들이 모두 사바세계로 와서 각 보배나무 아래 사자 좌에 앉으니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에 가득하였으나 모두 앉지는 못하셨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8방(八方)으로 각 2백만억 나라를 변화시켜 청정케 하 시고,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천인들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통하여 하나의 불국토가 되어(通爲一佛國土)... 여러 부처님들을 앉게 하셨다.

또 그래도 자리가 부족하여 부처님께서 다시 8방(復於八方)으로 각 2백만 억 나라를 청정케 변화시키고,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천인들을 다른 곳으 로 옮기고... 통하여 하나의 불국토가 되어... 여러 부처님들을 앉게 하셨다.  이와 같이 시방세계의 부처님들이 모두 다 오셔서 8방(坐於八方)에 앉으시 , 각자 시자를 석가모니 부처님께 보내 문안드리고, 보화를 흩어 공양하 면서 보탑을 열기를 원하였다.

F.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분신부처님들이 모두 모여서 각 사자좌에 앉아 계시 고, 또 보탑열기를 원하므로 자리에서 일어나 허공에 머물면서 보탑을 열었다보탑 속에는 다보여래의 전신(全身)이 흩어지지 않고 사자좌에 앉아 선정 에 드신 듯하였고, 다시 말씀하셨다.

"거룩하고도 거룩하십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이 법화경을 명쾌하게 설 하시므로 이 경을 들으려고 이곳에 왔습니다."

③ 다보부처님께서 보탑 속의 자리를 반 나누어 주면서 석가모니 부처님께 앉으시라고 하시니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탑 속으로 들어가 결가부좌하셨다.

④ 그 때 대중들이 두 분 여래께서 칠보탑속의 사자좌에 결가부좌로 계시는 것을 보고 “부처님께서 높고 멀리 앉아 계시니 우리도 함께 허공중에 있게 하여 주셨으면...” 하니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신통력으로 모든 대중들을 허 공중에 있게 하였다.

그리고 큰 음성으로 "누가 이 사바세계에서 신비스런 법화경을 널리 설하 겠느냐. 지금이 바로 그러할 때이다. 여래는 머지않아 열반에 들 것이니라. 부처님께서는 이 신비스런 법화경을 부탁하여 계속 있게 하려고 하는 것이 니라"고 말씀하셨다.


2. 불국사 석가탑, 다보탑과의 관계

. 불국사의 석가탑, 다보탑이 견보탑품의 내용을 기초로 디자인되었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이를 다시 읽는 까닭은 그 속에는 위 두 탑을 감 상함에 있어 의외로 많은 시사점이 있기 때문이다.

. 중국의 대동이나 용문의 석굴 등에서 보는 "이불병좌"의 도상이 견보탑 품의 내용에 의한 것이라고 일반적으로 말하지만,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이 불병좌상은 위 견보탑품 중 "F③"의 장면을 표현한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단순히 "불국사 쌍탑은 이불병좌를 탑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말한다면, 이 는 정밀하지 못한 표현이다.

만약 불국사에서도 단순히 견보탑품의 내용을 표현하고자 하였다면, 탑하 나만 세우고 그 속에 이불병좌상을 조각하거나 그리거나 하면 되는 것이었 다. 그러나, 불국사에서는 그렇게 단순하게 처리하지 않았다.

불국사를 축조하면서 사천왕사, 망덕사, 감은사 등에서와 같이 쌍탑을 예 정하고 있었다면, 그리고, 견보탑품을 보았다면, 여기에 등장하는 다보여래 의 칠보탑 뿐만아니라 석가여래도 탑으로 형상화하여 쌍탑으로 조성하려는 아이디어가 생길 것이다.

. 불국사의 두 탑은 위 견보탑품 중 "E"의 장면, 즉 석가모니 부처님의 분 신제불이 모두 한 곳에 모여 앉아 석가여래가 다보여래의 보탑을 열어 그 전신(全身)을 보여주기를 바라고 있고, 삼천대천세계가 통하여 하나의 불국 토가 되는 바로 그 상태를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이 시점이 중요하다. 이 시점에서 사바세계가 막 변하여 청정 해지고... 삼천대천세계가... 통하여 하나의 불국토가 되었으므로.

불국사의 이름에 걸맞는 불국토(通爲一佛國土)가 이 사바세계에 막 출현한 시점을 표현한 것이다. 불국사를 축조한 사람은 쌍탑의 배치를 견보탑품의 시간적 진행순서 중 가장 절묘한 시점을 포착하여 건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예컨대, 통도사 영산전 벽화 중의 다보탑처럼 다보탑 안에 이불병좌상을 표현하면, 다보탑 하나로서 견보탑품의 표현은 충분하고, 따라서 쌍탑이 설 자리는 없다. 쌍탑은 위 "F③"이전의 시점이어야 한다.

라. 견보탑품 "B"의 내용에 따라 쌍탑 중 동방에 계셨던 다보여래의 탑이 “동탑"이 되고, 석가탑이 "서탑"이 된 것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 석가탑 둘레에 있는 이른바 "팔방금강좌"도 실은 위 "E"의 장면에서 "8방 으로 나누어 앉으셨다"는 여러 분신 부처님들이 그곳에 앉아 있다는 내용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위 "E"에는 "팔방(八方)"이라는 말이 3번이 나 나온다.

팔부신중이나 보살들의 자리가 아니라 석가모니 부처님의 여러 분신불들 이 앉은 자리를 간략히 표현한 것이다.

"탑구(塔區)"운운은 다른 탑에서는 몰라도 이 석가탑에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석가탑은 그 자체로서도 존재의미가 있지만, 오히려 그보다는 다보 탑과의 관계 속에서 더 존재의미가 있는 것이다. "탑구"로 석가탑의 영역을 한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석가탑의 기단부가 그 아래쪽의 다듬지 아니한 자연석을 "그랭이기법"으로 물고 있는 것이 기사굴산(영취산)의 자연상태에서 설법하고 계신 석가여래 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말하는데, 그럴 듯하다.


3. 석가탑, 다보탑의 형상에 관하여

. 한편 쌍탑의 형상도 당연히 견보탑품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 석가탑의 형상은 이미 중국에서 전래한 대로 다층누각식 목탑을 기본으 로 하여 전탑적 요소가 가미되어 감은사 3층석탑으로 형태가 잡혀진 것을 기초로 해서 좀더 세련되게 형상화한 것이다. 너무나 세련되게 형상화하였 지만,

원래 탑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전래 당초부터 석가여래의 탑이었으니 석 가여래를 종전에 해오던 대로 3층석탑(전형석탑)으로 형상화하는 것은 어쩌 면 당연한 귀결이라고 할 수 있다.

석가탑의 아름다움은 다보탑과 비교해 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전형석 탑 정립의 과정 속에서 석가탑 직전에 축조된 다른 석탑들, 즉 나원리 5층 석탑, 황복사지탑, 천군리 쌍탑 등과 비교하면, 그 안정감과 상승감의 조화 가 더 뚜렷하다. 전형석탑 중 가장 뛰어난 작품이고 이 뛰어남은 창녕 술정 리 동탑, 경주 마동 장수사지탑, 청도 봉기동 탑 등등으로 한동안 이어지고 있다.

석가탑이 남성적이고, 다보탑이 여성적이라는 표현에는 전혀 동의할 수 없 다. 우선 석가탑은 다보탑보다도 기단부부터 탑신부까지 그 크기가 작다. 오히려 다보탑이 공작처럼 화려하다고 한다면, 석가탑은 소박하고, 단아하 고, 정숙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 석가탑에서 상륜부를 제외하면 노반까지 거의 98%가 직선 내지 정사각 형(正方形) 또는 직사각형(直方形)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주역 곤괘 六 二의 "直方大라 不習이라도 无不利라"가 연상된다. 文言전에는 "直은 其正也 요, 方은 其義也니 君子는 敬以直內하고 義以方外하며 敬義立而德不孤하니 라"고 풀이하고 있다. 즉 正方形은 方正, 端正하고 品位있다는 의미일 것이 다.

. 다보탑의 형상은 위 견보탑품 "A①"에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그중 "5천 난순, 감실천만"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위 "A②" 즉 보탑 중에서 큰소리가 나는 것(出大音聲)도 표현하여 야 할 것이다. 이것이 매우 중요하다.

다보탑을 ①계단이 있는 기단부, ②기단부 위에 기둥이 있고 바람이 통하 는 개방된 1층, ③정사각형, 정팔각형 등의 난간과 감실이 있는 2층(세분하 면, 이를 다시 3층으로 나누어 볼 수 있지만), ④상륜부로 나누어 본다면, 2 층은 견보탑품 "A①"을, 1층은 위 "A②"를 각 형상화한 것으로 본다.

다보탑의 형상화에서 위 "A①"의 다채로운 난순, 감실 등을 표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석가여래의 설법이 진실이라고 증 명찬탄하는 다보여래의 대음성(A②)이라고 본다.

견보탑품을 자세히 읽어보면, "大寶塔從地湧出과 寶塔中出大音聲"이 계속 반복하여 나온다. 즉 "A①"과 "A②"가 동등하게 계속 변주되고 있다.

마. 다보탑 1층의 가운데 기둥과 4곳의 ㄱ자형 기둥이 어떻게 대음성을 형상 화한 것이 되는가.

가운데 기둥은 다층누각식 목탑의 심주(心柱)와 같은 것이지만, 나머지 4곳 의 ㄱ자형 기둥은 하나의 방실(房室)을 표현하려고 한 것으로 본다.

다보탑 1층의 중심주를 크고 넓게 하고 4곳의 기둥을 작게 해서 중심주의 4면에 2불 등을 조각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고, 중 심주를 좁게하고 4곳의 기둥을 ㄱ자형으로 하여 공간을 넓게 잡은 것은 결 국 그곳에 방실이 존재함을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그 방실은 사방으로 통 하는 열린 공간이다. 곧 그곳에서 발생한 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나가는 형 상인 것이다.

. 한편 千字文 125구절 중 28구절에 "空谷傳聲 虛堂習聽"이란 말이 있다. "빈 골짜기에 메아리가 울리고, 텅 빈 방에서는 소리가 울려 거듭해서 들린 다“라고 번역해 볼 수 있으리라. 다보탑의 1층 방실은 바로 이 공곡 또는 허당이 아닐까. 서기 750년의 시점에 김대성 같은 선지식에게는 당연한 것 이 아닐까. 마치 로댕이 발자크 입상을 뭉뚱그려 놓음으로써 천재의 외침을 표현하였듯이 다보탑 1층은 바람이 통하게 개방적으로 구성함으로써 다보 여래의 대음성이 그 사이에서 울려나오는 듯하게 표현한 것이 아닐까 한다.

만약 그렇다면, 이는 석조조형물로써 소리를 표현한 셈이 된다. 유쾌하지 않은가.

. 만약 다보탑의 1층 열린공간을 폐쇄공간으로 하고, 그곳에 견보탑품 "A ①"에 묘사된 난간, 감실, 영락, 보령 등을 조각하거나 매달거나 할 수도 있 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보탑의 겉모습만 형상화한 것밖에 되지 않 는다.

보탑이 출현한 이유는 석가여래의 묘법연화경 설법이 진실임을 증명하고 자 하는 것인데, 보탑이 출현만 하고 아무런 말이 없이 조용하면 그 증명이 부족하지 않을까 한다.

다보탑의 1층이 정혜사지 13층석탑의 1층과 같이 폐쇄된 것이라면, 그 탑 신 속에 다보여래가 계신 것은 추측할 수 있지만, 달리 특별한 메시지는 없 는 것 아닌가. 이 경우에는 장차 석가여래가 열 "문비(門扉)"의 표시가 분명 해야 할 것이지만, 그러나, 극적인 장면은 연출되지 않고 만다.

. 다보탑의 2층이 많은 난간 및 감실을 표현하고 있고, 그 형태가 정4각형, 정8각형, 연꽃형(16복엽) 등이다. 이를 불교의 4성제, 8정도, 12연기, 회삼귀 일(會三歸一) 등등 많은 가르침과 연관시킬 수 있을 것이다.

. 다보탑 1층을 2층기단으로 보는 견해는 다보탑을 "이중기단에 3층탑신“ 이라는 전형석탑의 구조에 억지로 맞추려 하는 것이거나 아니면 화엄사 4 사자삼층석탑의 구조와 동일하게 보는 것 같아 받아들일 수 없다. 다보탑의 기단부 위 4곳 각 모퉁이에 사자상이 있었는데, 이 사자상과 기둥을 하나로 합하면, 바로 4사자삼층석탑의 2층기단처럼 된다. 그러나, 후자는 전자를 참 고할 수 있지만, 전자는 견보탑품에서 직접 창안해 내었을 것이다.

. 다보탑 기단부의 4방에 있는 계단 옆에는 각 2개씩 기둥(법수석)이 있는 데, 그 기둥 안쪽에는 난간을 끼울 수 있는 공간과 이를 받치는 동자주 형 태가 양각되어 있다. 이를 근거로 당초에는 그곳에 난간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견해가 있는데, 이는 예술적 미에 둔감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 다. 만약 현재의 다보탑에 위 난간을 실제로 설치해 본다면, 다보탑의 미는 완전히 파괴되고 말 것이다.

결국 이것은 처음부터 "보이지 않는 난간, 상상 속의 난간"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마치 팔방금강좌에 분신불을 만들어 놓지 않았듯이. 석등 또는 왕 릉의 장명등이 실제로 불을 켜는 조명기구가 아니듯이. “여백의 미”같은 것 이라고 하겠다.

카. 다보탑 기단부에 계단은 왜 설치해 놓았을까. 견보탑품 "F"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냥 허공으로 올라 보탑을 열었으니 계단은 필 요 없다. 이것은 계단의 높이만큼 다보탑이 허공에 떠 있다는 표현이 아닐까.

한편, 계단이 설치된 곳까지가 기단이고, 그 이상은 탑신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1층 기단에 계단을 설치하였다면, 2층 기단에도 계단을 설치해야 될 것이다.

타. 시방세계의 모든 분신불들이 한 곳에 모인 이유는 칠보탑 속에 계시는 다보여래의 전신을 보고 공양하기 위함인데, 이는 결국 부처님의 깨달음의 경지를 다시 체험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한편, 위 “F④”에서 모든 대중들이 두 분 부처님께서 높고 멀리 계시므로 그들도 허공중에 올라 부처님과 가까운 높이로 가고 싶어 하는데, 이것도 결국 모든 대중들이 부처님의 깨달음에 더 가까이 가고자 하는 것이리라. 그 깨달음에 가까이 가려면 허공중에 올라야 한다는 설정은 곧 모든 것이 공(空)함을 깨달아야 한다는 뜻이 아닐까.

결국 다보탑의 1층에 두 분 부처님께서 계시는 것이라면, 그곳은 부처님의 깨달음의 경지이고, 일반 대중이 그 경지에 오르려면, 한 계단 한 계단씩 수행을 해서 올라가야 한다는 것을 다보탑 기단부의 계단이 시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4. 끝으로

. 불국사 쌍탑 사이에 서서 쌍탑의 현 장면(위 "E")의 다음 장면(위 "F")을 그려 본다.

석가탑에서 석가여래가 나오셔서 다보탑으로 간다. 그리고 모든 분신제불, 사부대중 등이 주목하는 가운데 다보탑의 1층 다보여래가 계신 곳의 문을 연다. 그곳에 다보여래의 전신이 선정에 든 듯 계시는 모습을 모든 이가 본다...

그런데, 이런 모습은 실제로 불국사 대웅전 앞마당에서 매일매일 펼쳐진 다. 시방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은 그 각자가 모두 분신불이 아니던가.

혹시 아직도 분신제불들이 덜 모인 것이고, 더 많은 분실불들이 모이기를 기다리는 것은 아닐까

. 결국 불국사 쌍탑은 “견보탑품”을 구상화한 것이다. 불국사 대웅전 앞마 당은 견보탑품이 전개되는 공간인 것이다.

김대성의 의도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대중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시 청각으로 표현하는 것이리라. 진리는 평이명백(平易明白)하여야 한다. 만약 진리가 “삼본정(三本定)” 처럼 어려운 것이라면, 대중들에 대한 설득력은 약 해질 것이고, 이는 보살의 정신과는 맞지 않는다.

법화경이 서기 406년 구마라지바에 의하여 한역(漢譯)된 이후 중국 한국 일본 등에서 널리 유행되었지만, 불국사 쌍탑처럼 조형화된 적은 없다고 하는 바, 그 독창성이 감동적이다. 일본에서 “다보탑”이라 불리는 탑(70기 정도라 함)은 많지만, “견보탑품”과의 조형적 관련성은 적어 보인다.

다. 불국사에 대하여 조선시대 선비들이 읊은 한시 중에 제일 마음에 드는 것은 동산 손승구(東山 孫升九, 18C)의 것이다. 그 칠률(七律) 중 함련(頷聯)이

虹梯兩起連平地무지개 다리를 2개씩 세워 평지를 연결하고

寶塔雙高入半穹보탑이 쌍으로 높이 하늘에 치솟아 있네

인데, 이를

虹梯兩起基淨土 무지개 다리를 2개씩 세워 정토의 터전을 잡고

雙塔相應妙法窮 쌍탑이 서로 응하여 묘법연화경의 진리를 다하네

으로 살짝 바꾸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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