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6-05-16 00:00
오월 단상斷想(청도지구 답사)
 글쓴이 : 백태순
조회 : 11,304   추천 : 309   비추천 : 0  

[사시마지巳時摩旨를 준비하는 스님]

운문댐이 굽어 내려 보이는 곳에 댐건설로 인하여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마음 한 자락을 보듬을 수 있게 망향정과 망향비가 서 있었다. 흑백사진 속에 남아 있는 지촌 공암의 모습은 그들에게 만이 아니라 내게도 많은 이야기가 있는 곳이다.
지촌 강가에서 다슬기를 줍고 공암 계곡에 파리낚시를 던져두고 밤새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별을 보던 시간들도 저 댐 어느 곳엔가 잠겨 가끔씩은 일렁이고 있을 것이다.
이런 저런 옛 기억들을 더듬어 가다 보니 비포장 길을 털거덕거리며 풀풀 먼지 따라 찾던 운문사는 옛 모습이 기억나지 않아 낯선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다가왔다.
그 시절 늘 솔밭입구까지 나와서 반가이 맞아주시던 강원의 고운 스님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천천히 솔(홍송)밭 길을 걸으면서 느낄 수 있었던 많은 것들은 차를 타고 휙 지나면서 이제는 누릴 수 없는 것이 되었다.
범종루는 오월의 신록과 햇살이 어우러져 눈부신 모습을 하고 있었다. 운문사 마당을 들어서니 천연기념물 제180호인 처진 소나무가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고 다만 내가 변했을 뿐이라는 듯이 언제나 처럼 그 자리에 그렇게 서 있었다. 삼각대를 세워 놓고 비구 한 분이 그 앞에서 열심히 사진을 담고 있었다.

보물 제 316호인 원응국사비 앞에서 고복우 선생님은 열띤 설명을 하시고.
어제 내린 비로 운문사 주변 산들은 운무로 가득하고 멀리 보이는 북대암은 오월 신록 속에 한 폭의 산수화를 연출하고 있었다.
북대北臺는 운문사에서 보면 북쪽인 까닭에 그리고 제비집처럼 높은 곳에 지어져 있어서 북대라고 한다. 운문사에서 바라보는 경치도 좋지만 북대에서 내려다보는 운문사의 경치 또한 선경仙境에 비할 수 있다.
관음전 뜰 앞에는 서양산딸나무가 그 향기를 흩날리고 있고.
작압鵲鴨전에는 신라시대에 조성한 석조석가여래좌상(보물317호)과 사천왕 석주(보물318호)가 봉안되어 있다. 법당 안에서는 스님의 독송소리가 들여오고 예불의식이 진행되고 있어 경건함을 방해를 할 수 없어서 열린 문밖에서 바라만 보았다.
비로전(대웅보전)은 보수공사를 위하여 골조를 앙상히 드러내고 있었다. 서까래 위에 짚 대신 나무껍질을 사용하여 알매흙을 얹었던 것으로 보였다. 어수선한 공사용 가림막 앞에는 동·서로 보물 제 678호인 삼층석탑이 서 있었다. 이 두 탑은 2단의 기단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으로 규모와 양식이 서로 같다. 각 층의 기단에 기둥모양을 본떠 새기고 특히 윗 층 기단에는 8부중상八部衆像을 새겨 놓았는데 모두 앉아 있는 모습이다. 9세기에 세워진 것으로 여겨지며 기단부가 몹시 부서져 무너지기 직전이던 것을 일제시대에 보수하였는데 이 때에 팔부중상 등 일부를 새로운 돌로 보충하였다. 석탑 주변에는 단풍철쭉 분단나무가 꽃을 피우고 있었다.

삼층석탑과 석등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자니 巳時摩旨를 올리는 스님들의 경건하고 조심스런 발걸음들이 오가고 있었다.
불교에서 부처에게 올리는 밥은 일반 공양과는 약간 다르다. 우선 밥을 지을 때 잡다한 말을 하지 않아야 하며 밥을 지어 법당으로 옮길 때는 밥그릇을 오른손으로 받쳐 들고 옮긴다. 부처에게 올리는 밥은 대부분 사시巳時 즉 오전 9시 30분에서 11시 30분 사이에 올린다. 이것은 생전에 부처가 하루에 한 번 그 시간에 밥을 먹은 데서 유래한다. 하지만 특별한 경우에는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을 수도 있다.

살그머니 공양간을 들여다보니 먹음직스런 누룽지가 행자들의 주걱에 퍼지고 있고 무쇠솥 위에는 조왕단竈王壇이 모셔져 있었다. 조왕신앙은 우리 민족에 전해 내려오는 고유한 민간신앙으로 불교에 수용되면서 조왕은 호법선신으로 바뀌었다. 조왕은 본래 부엌을 관장하는 신이라서 사찰에서도 조왕단은 부엌에 두는 경우가 많다.
만세루에 서자 그 시절 운문강원의 강주講主셨던 명성스님께서 우리들을 매료시켰던 맑고 밝은 미소로 재미난 법문을 들려주고 계신 듯한 착각을 하게끔 했다.

567년(신라 진흥왕 28) 창건 당시에는 소작갑사小鵲岬寺라고 하였고 600년(진평왕 22) 원광圓光이 중창하고 절 이름을 대비갑사大悲岬寺로 바꿨으며 대비사라는 절 이름은 불교의 대자대비에서 유래한 말인데 언제 대비갑사가 대비사로 바뀌었는지는 알 수 없다.
보물 제834호인 대비사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계 맞배지붕 건물로 내부에 1685년(숙종 11) 중건했다는 기록을 담은 문서가 전한다. 절 마당에는 불두화가 피어나고 이끼가 고운 바위에는 담쟁이가 자리를 하고 고운 들꽃들이 가꾸어져 있었다. 부도밭으로 가는 계곡은 지난 비로 불어나 있었고 물소리를 크게 내고 여기저기에 고추나무가 고운 향기를 보내고 덜꿩나무 미나리냉이등이 꽃을 피우고 있었다.
부도밭에는 소요逍遼 태능太能(1562∼1649)과 취운翠雲 학린學璘(1575∼1651)의 부도를 비롯한 16기의 부도와 부도비들이 모여 있었다. 지금은 비록 작은 절이지만 부도들을 보면서 이곳 대비사가 고찰이였음을 느낄 수 있었고 절 양쪽에는 회색과 갈색의 삽살개가 온통 눈을 뒤덮은 채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었다.

운강고택을 찾아가는 길 강 건너 바라다 보이는 절벽 위의 자리한 운치 있는 정자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찾아보니 조선 중종 14년 삼족당 김대유가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건립한 것으로 그의 호를 따 삼족당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중요민속자료 제 109호로 지정된 운강고택의 이름은 임진왜란 이전부터 이곳에 있던 옛집을 운강 박시묵이 1829년 중건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고택 입구에는 커다란 현판에 운강고택이라 쓰여 있었다. 사랑채와 중문간채 사이 꽃담은 기와를 이용 꽃 모양의 무늬와 吉자를 새겨놓았으며 그 위아래로는 기하학적인 무늬를 새겨놓았다. 이는 궁궐 등에서 사용하던 것으로 민간에서는 흔하지 않은 것이다.
뒷사랑과 곡간채 사이에는 협문을 내어놓았는데 이는 부녀자들이 사랑채 앞을 지나지 않고 안채를 출입할 수 있게 해놓은 내외문으로 그 옆에는 운치 있는 소나무 한 그루가 시들어 가고 있어 안타까웠다.
안채는 보수공사중이였고 마당에는 펌프가 있고 헛간 구석에는 디딜방아도 있고 살며시 열어본 창고에는 옛 물건들이 먼지에 쌓인 채 세월을 견디고 있었다. 마당 가운데 꽃밭에는 돌나물만 무성하고 돌나물 밭에는 게으른 두꺼비 한 마리만 두 눈을 껌뻑이고 있었다.

보물 677호인 장연사지 삼층석탑은 개울가 감나무밭 한가운데 서 있었다. 초록을 더하여 싱그러운 감나무 사이로 동·서로 세워진 두 탑은 거의 같은 양식을 보여 주고 있다.
서탑에만 머리 장식을 받치던 네모난 받침대와 복발覆鉢이 남아 있는데 복발은 훗날 보충한 것이다. 동탑을 해체하여 보수하는 과정에서 1층 몸돌 윗면에서 사리장치가 발견되었다
근처의 사원재思遠齋에는 장연사지의 유물로 추정되는 석조 주초 석등대좌에 부러진 당간지주의 윗부분이 남아 있다. 마을 아래쪽 과수원에는 부러진 당간지주의 아랫부분이 남아 있는데 이 당간지주는 특이에게 주렴무늬가 조각되어 있었다.

대적사에서는 작지만 참 고요하고 평화로운 풍경과 마주치게 된다. 입구 풍엄豊嚴의 석종형부도에는 산괴불주머니가 곱게 피어 있었고 초파일 남은 음식으로 배부른 고양이 한 마리가 게슴츠레한 눈으로 우리를 맞고 있었다. 보물 제836호 대적사 극락전 기단 소맷돌에는 세조 때 양성지梁誠之가 용지어천가龍飛御天歌에 등장하는 6대 조종祖宗의 업적 성덕成德 대공大功 천명天命 민심民心 등의 내용을 그림으로 그린 용비어천도龍飛御天圖가 그려져 있고 기단에 연꽃무늬와 거북 무늬를 조각하고 주변에 H자 모양의 선 조각을 하였다. 이런 조각들은 다른 건축에서는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특징이 되고 있다. 건물 안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의 천장으로 꾸몄는데 천장은 앞뒤로 층지게 만들어 특이한 구성을 하고 있으며 불단 위로는 불상을 엄숙하게 장식한 간략한 닫집을 설치하였다. 내부 천정과 외부 공포에 용머리 장식을 하고 있었다.

대적사 가는 길에는 메이지 37년(1904년)에 준공했음을 전하는 초석이 붙어 있고 일제시대 1926년까지 경부선 철도로 사용되다 노선이 바뀌면서 폐쇄된 터널이 있다. 내부는 직육면체인 돌과 붉은 벽돌로 만들어 졌고 여름이면 인근 마을주민들이 더위를 쫓는 곳으로 이용했고 방치돼 왔으나 지금은 감 와인을 숙성할 때 사용하는 와인숙성굴로 사용되고 있다. 5만병이 넘는 와인을 저장할 수 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와인이라면 대부분 포도를 연상한다. 감와인이 경북 청도에서 생산되고 있다. 감은 떫은 맛을 내는 탄닌Tanin 성분이 포도에 비해 20%나 더 많아서 혈관을 튼튼하게 하고 심장병에 탁월한 효과를 나타내며 숙취 해소에 그만인 탄닌 성분의 대량 함유는 곧 이를 소재로 만든 감그린의 좋은 효능으로 이어진다. /감그린/이라는 이름으로 생산되는 감와인은 고급스러운 황금빛을 내는데다 동·서를 막론하고 입맛에 맞아 2005년 11월 부산 APEC 정상회의 참가대표단 리셉션 만찬주로 선정되는 성과를 거뒀다고 한다.


 
   
 

하이게이밍
클럽골드카지노
top카지노
탑카지노
안전놀이터주소
온라인카지노
우리카지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