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6-01-11 00:00
자유로운 영혼을 꿈꾸며(오봉산지구답사)
 글쓴이 : 백태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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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운율韻律도 없이 쉼도 없이 제 흐름대로 스쳐 지나가기만 하고..
스쳐 보낸 시간들에 대해 못내 아쉬운 마음도 잠시
다가오는 시간들을 급급하게 맞이하기도 분주한 새해 새달의 첫 주말 ..

새로운 다짐과 바람들을 안고서 오봉산으로 향했다.
오봉산은 산이 다섯개의 봉우리로 형성되어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富山으로 불리기도 한다.
매일 같이 지나치면서 오봉산 산마루 주사암의 불빛을 보고
저곳 부처님과는 인연 닿지(?)않음을 아쉬워했다.
다른 분들은 골짜기의 지형이 여성의 특정 신체부위를 닮았다하여 붙여진 삼국유사에 선덕여왕에 얽힌
개구리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는 여근곡女根谷을 통하여 걸어서 오봉산으로 향하고
불량품(?)은 주사암까지 차량통행이 가능한 임도를 통해 시산제 제물과 함께 짚차에 실려서(?) 올라갔다.

주사암朱砂庵은 오봉산 정상(해발688미터)에서 북쪽으로 삼신바위 서쪽 아래에 자리잡고 있다.
주변 경관이 수려하고 조망 또한 뛰어나다. 영산전과 삼성각 법당 등이 있는 작은 규모의 암자지만
1300여년전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치맛자락에 붉은 모래 물감이 묻은 줄도 모르고 이 암자를 드나들었던 신라의 왕녀는 누구였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고즈넉한 산사와 유난히 푸르고 맑은 겨울하늘과 겨울나목들
멀리 산들이 어우러진 풍경들이 눈과 마음을 평온하고 즐겁게 해 주었다.

주사암 지맥석에 제수를 차리고 오봉산천지신명을 모시고 한해의 바람들과 다짐들을 고하며
이루고 지키게 해 달라고 정성을 다하여 절 올리고..
손수협선생은 정성스레 적어온 축문을 읽고..
한 분 한 분 나름대로의 바람을 담고 시산제를 마치고..
몇몇 분들의 수고로 준비된 정갈하고 맛있는 점심을 나누고 하산길에 올랐다.
하산길에 부산성의 유적을 돌아보고 죽지랑과 득오의 이야기를 담은
모죽지랑가慕竹旨郞歌를 다 함께 읊어 보았다.
서로에게 그런 존경과 우정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있음 또한 행복이라는 생각을 하며.
내게는 그런 지기들이 몇이나 있을까?
나는 주위의 다른 이들에게 그런 친구인가?
하는 생각들을 하면서 올 한해에는 내게 또 주위에 그런 행복들이 가득했으면 하는 바람을 지니고.

하산길은 사람들의 흔적이 뜸한 탓에 낙엽들이 그대로 쌓여 있고
낙엽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낙엽 밟는 사람들의 즐거운 비명(?)소리가 온 산에 가득하고..
우리가 준비해 간 제주를 듬뿍 드시고 취하여 고운 낮잠에 드신
오봉산 산신령의 호통소리(?)가 들려 올 것도 같고..

산 아래 들길에는 쓰레기풀이 진한 향기를 품은 채 말라 있고
아직 길 떠나지 못한 박주가리들이 햇살에 빛나고..
천촌마을 어느 집 마당에는 메주가 가지런히 햇살에 말라가고..
마을 회관앞에서 일행을 기다리시던 이사장님께서는
마주 보이는 산의 형상이 코끼리를 닮았지 않느냐고 하신다.
자세히 보니 코끼리가 코를 길게 늘어뜨리고 있는 옆모습과 흡사해 보인다.
전설과 신화는 이리 만들어지는 것이라 얘기하시며
오늘부터 산 이름을 상산象山이라고 명명하기로 하셨다 한다..

보물제908호인 용명리사지삼층석탑龍明里 寺址 三層石塔은
상륜부 노반露盤이 제자리를 찾은 모습으로 서 있었다.
이 탑의 노반은 이미 오래 전에 제자리를 이탈한 것으로 보이며 일제 강점기인 1943년에 이 탑을 해체·보수할 때도 행방을 알지 못해 3층 옥개석까지만 복원돼 많은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건천초교 화단에 있던 상륜부의 노반을 원래의 것이 맞는지 여부를 면밀히 조사·검토한 뒤 문화재위원의 자문을 받은 결과 크기 양식 재질 등 모든 부분에서 이 탑의 노반이 확실한 것으로 판명됨에 따라 2005.5.18에 복원하게 됐다
노반을 제자리에 복원함으로서 일제 강점기에 해체 보수한 이후 62년 만에 한층 원형에 가까운 모습으로 선보이게 됐다.
용명리삼층석탑앞에서 박주가리 씨앗을 불어 날려 보내며 모두들 아이들 마냥 즐거워했다.
푸른 하늘을 향해 아무 거리낌 없이 훨훨 비행을 하는 박주가리 씨앗을 보며 그들의 자유로움과 머물지 않음이 마냥 부러웠다.

효현고개(솟티고개솟태고개라고 불렀다)왼편 선도산 자락에 경주지역에서 가장 많은 고분이 집단적으로 분포하는 곳을 장뫼(障山)라 부르고 이 고분군을 장산고분군이라 한다.
신라의 고분은 早期의 토광묘시기 前期(AD350-6세기초)의 적석목곽분시기 後期(6세기이후)의 횡혈식석실분으로 나뉘는데 장산고분군은 신라의 후기 고분 양식에 속하는 횡혈식석실분이다.
현재 경주지역에서 내부를 개방하는 석실분은 장산토우총과 구정동방형분이 있다.
적석목관분은 평지에 만들어지며 피장 유물이 많은 후장厚葬에 속한다. 또한 단 1명의 피장자를 위하여 만들어지며 엄청난 비용과 인력을 필요로 한다. 이것은 영혼불멸설에 입각한 생전의 권력만큼이나 유물을 부장副葬하게 되고 권력에 따라 순장도 하였다. 이에 비하여 석실분은 3명에서 많게는 10명까지 묻을 수 있으며 자식이 죽으면 뼈를 한쪽으로 모으고 또 묻을 수 있는 경제적인 무덤이었다. 위치 또한 산지에 있기 때문에 농토를 잠식하지도 않았고 부장품도 최소로 줄여서 박장薄葬을 하였다.
이와 같은 변화는 불교가 공인된 후 내세관의 변화에 따른 것이다.
발굴당시 토우잔편이 발견되어 토우총土偶塚이라 명명되었다.
문은 굵은 자물쇠로 밖으로 굳게 잠겨있어 내부를 확인하며 자세히 볼 수 없었다
시체를 놓았던 시상대는 동서로 놓여 있고 출입문은 남쪽으로 나 있고 입구에는 화강암을 치석한 문비와 문지방이 있으며 시상대는 시신 두 구가 누울 수 있는 것과 그보다 한단 낮게 또 한 구의 시신이 누울 수 있도록 되어 있으며 탁자형의 시상을 가운데 두고 그 위에 동쪽에는 머리를 고정시키는 돌베개인 두침頭枕과 서쪽에는 발을 고장시킬 수 있는 발받침인 족좌足座 각 3구씩을 둔 추가장의 횡혈식석실묘이다. 과거 내부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유개합과 합 토우편 등 유물이 수습되어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수장하고 있다.
장산토우총 뒤로는 수많은 무덤들이 있었다. 이곳이 신라인들에게는 북망산천北邙山川이였던 곳이다.

새로운 시간들이 내게 주어졌고
이 시간들 속에서 나 자신과 어떤 약속을 하며
또 무엇을 지켜갈 수 있을까?
지난해는 꽃들을 만나고 사진을 담듯 올해는 무엇을 할까?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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