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5-10-08 00:00
행복한 길(선도산지구답사)
 글쓴이 : 백태순
조회 : 10,402   추천 : 230   비추천 : 0  

[두대리마애석불- 차나무에 꽃이 폈습니다]

늘 오르는 일은 내게는 힘든 숙제 같다. 그러나 오르지 않고서는 볼 수 없는 풍광과 오른 후 정상에서의 느낌은 산 아래 마을에서는 맛 볼 수 없는 것이다.
선도산정상이 걱정스러워 몇 번 망설이다가 참석한 이번 답사는 연휴 한가운데여서 오붓한 답사가 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뜻밖에 많은 분들이 참석하셨다. 새로운 얼굴들이 많이 보여서 즐거운 답사가 될 것 같았다.

선도산(仙桃山)은 경주시 서쪽에 있는 높이 390m의 낮은 산이다. 이 산에는 신라 건국설화와 관련 있는 선도산 성모가 신라 개국 이전부터 이곳에 살면서 신라를 지켜주었다는 전설이 있다. 태종무열왕릉을 비롯해 서악서원 서악동삼층석탑 서악동고분군 진흥왕릉 등이 이 선도산 기슭에 있다.
선도산 자락에서 처음 만나게 되는 서악동삼층석탑은 보물 제 65호로 태종무열왕릉이 있는 곳에서 아미타삼존불상이 있는 선도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다.
통일신라시대의 모전탑(模塼塔)계열에 속하는 석탑으로 지면에는 두툼한 장대석 4장을 동서로 깔아서 지대석을 삼았고 그 위에 8개의 석괴로 2단으로 축조하여 입방체의 이형기단을 구성하였다. 입방체의 이형기단과 탑신에 비해 옥개석(屋蓋石)이 커서 어색한 느낌이 들었고 세련미를 느낄 수 없었다.

서악동삼층탑을 지나면 진흥왕릉(사적제177호-24대) 문성왕릉(사적제178호-46대) 헌안왕릉(사적179호-47대) 진지왕릉(사적제178호-25대)이 자리 잡고 있으며 규모도 크지 않고 별다른 특징이 없다. 화랑 제도를 창설하였으며 국토를 확장 순례하는 등 치적을 남긴 진흥왕의 능은 제일 위쪽에 있는데 치적에 비하여 능의 규모가 작은 점에 대하여 그 진위를 의심하는 학자도 있다.
비록 전시대의 왕조의 왕릉이라 하지만 헌안왕릉 옆에는 통훈대부 시강원찬독부권헌황선생지묘(通訓大夫 侍講院贊讀不倦軒黃先生之墓)가 왕릉과 나란히 묘역을 형성하고 있었고 석장승 한 쌍이 이를 지키고 있었다.
고분군 주변에는 철없는 제비꽃과 도라지모시대도 피어나고 삽주 쓴풀등 들꽃들도 나름으로 제 자리를 지켜가고 있었다.

무열왕릉 입구에서 걸어서 1.5km 정도 올라간 선도산 정상에서 마애삼존불을 만났다. 다른 이들은 겨우 390m의 낮은 산이라 하지만 내게는 무지 오르기 힘든 높은(?) 산이었다.
본존불은 경주 주변의 석불로는 가장 큰 불상이지만 파손이 심해 조각의 세부는 물론 옷무늬마저도 판별할 수 없을 정도이다. 특히 눈의 윗부분이 떨어져나갔고 몸의 정면에도 상하로 균열이 생겼다. 훼손된 눈 윗부분은 마치 베일에 가린 것처럼 느껴지고 자애로운 미소를 머금은 다문 입의 정감 가는 모습을 보며 소리 없는 충격에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리고 멀리 바라다 보이는 경주평야를 향하고 있는 당당한 모습에서 힘찬 기상이 느껴진다. 왼쪽 협시보살은 관음보살로 오른쪽 협시보살은 대세지보살로 추정되고 세 불상 모두 발아래에 복련연화문대좌가 있고 통일신라 초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두 협시보살의 모습은 길고 시원한 눈썹 웃음 짓는 가는 눈 큼직한 코 입가에 깊이 파인 보조개 터질 듯 부푼 뺨 등 어느 것 하나 소홀히 다룬 데가 없는 맵시 있는 조각이다.
오를 때는 단지 포기하지 않고 정상까지 가야겠다는 생각만 하면서 올랐는데 내려오는 길에는 주위를 둘러 볼 여유도 가지게 되었다. 고가 기와지붕에는 바위솔(와송)이 피어나고 동네마당에 심겨져 있는 꽃들에게도 가벼운 인사를 하면서 아는 체 하였다.

사찰식 나물밥으로 점심을 먹고 태종무열왕릉으로 향했다. 먼저 온 사람들이 국보 제25호인태종무열왕릉비에서 설명을 하는 사이 잠시의 망중한으로 오수의 유혹(?)에 빠진 사람들도 있고.
경주에 있는 많은 능 가운데 누구의 왕릉인지 단정할 만한 확증이 있는 것이 많지 않은데 이 왕릉은 앞쪽에 태종무열왕릉비가 서 있어 29대 태종무열왕의 능인 것을 확신할 수 있다. 능은 원형 토분으로 둘레 100m 높이 12m 이며 봉분의 아래에는 자연석으로 축대처럼 쌓고 큰 돌을 드문드문 괴어 놓은 호석을 둘렀는데 지금은 괴어 놓은 큰 돌만 보인다.
이와 같은 호석 구조는 경주 시내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고분의 호석 구조보다 한 단계 발전한 형식이다. 능 앞 비각 안에는 비신이 없고 아래 받침의 귀부와 비신의 머리를 장식하는 이수만 남아 있는 능비가 있다. 목을 길게 내밀고 등이 육각형의 귀갑으로 덮인 거북의 모습이 사실적으로 웅건하게 조각된 귀부와 좌우 모두 여섯용이 몸을 틀고 여의주를 다투는 형상의 동감 넘치는 이수는 통일신라 초기 석조 예술의 높은 경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걸작이다.

고분군을 돌아 내려오는 길에 막 걸음마를 연습하는 듯한 꼬마가 엄마 손을 잡고 고분을 오르고 있었다. 그 녀석에게는 생애 최초의 기념할 만한 첫 등정이였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새로운 느낌. 새로운 세상을 발견한 기쁨이 대단하지 않았을까 하는.

태종무열왕릉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두 개의 큰 고분 중 큰 것이 김인문의 묘(경상북도 기념물기념물 제 32호)이고 다른 하나는 김양의 묘(경상북도 기념물기념물 제 33호)로 알려져 있다. 문인석이나 무인석 석수도 없는 간소한 묘이다.
보물 제70호인 서악동귀부는 김인문 묘비의 대석으로 알려지고 있다.

효현리 삼층석탑은 보물 제67호로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의 양식을 보여주는 3층 석탑이다. 화강암으로 만들었으며 이중기단 위에 세웠다. 높이는 4.6m로 규모가 비교적 작고 기단의 기둥 새김이 면마다 아래위에 세 개씩이며 지붕돌의 층단받침이 4단인 점으로 보아 9세기경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며 상륜부는 없어졌다. 1973년에 해체·복원되었다. 탑이 서 있는 이 곳 일대는 동경잡기(東京雜記)에 애공사지(哀公寺址)라고 전한다.
탑 주변 대추나무에는 가을빛으로 대추가 알알이 익어가고 있었고 김호상선생의 열띤 설명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몇몇 분들은 대추수확(?)에 여념이 없었다.
추석날 아침이면 언제나 아버지의 “얘들아 대추 털자. 얼른 일어나야지”하시는 소리에 전날 늦게 든 잠자리에서 빠져 나오곤 했다. 아버지의 목소리에 우리형제들과 사촌동생들은 잠 덜 깬 눈을 부비며 마당으로 나선다. 대추나무를 긴 장대로 두드리면 우두둑 대추알들이 쏟아지고 가장 튼실하고 좋은 녀석으로 골라 차례상에 올리고 나머지는 주운 사람의 몫이 된다. 잘 익은 대추의 달큼함과 아삭거림이 좋아서 말린 대추보다는 생대추가 더 좋다. 대추를 먹으면 언제나 그 시절의 당신 목소리가 그리워진다.

법흥왕릉(사적176호)은 경주시 효현리 삼층석탑으로 들어가는 팻말있는 곳에서 100m쯤 더 가서 우측으로 들어가면 능이 있다. 능의 봉토 밑쪽에는 자연석 호석(護石)이 있으며 상석은 최근의 것으로 보인다. 주변에는 소나무숲이 울창하나 많은 업적을 남긴 왕의 능묘로서는 매우 빈약하다. 법흥왕릉 앞에서 왕릉과 화랑세기의 진위여부에 대해 진지한 토론이 있었고..

두대리마애삼존불(보물 제122호)은 굴불사지 석불상(보물 제121호)의 양식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서방 극락세계를 다스린다는 아미타불을 가운데에 새기고 양쪽에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새겼다. 높이 2.5m 크기의 당당한 대장부 같은 몸체에 풍만한 얼굴 미소를 머금은 자비에 넘치는 본존불의 표정은 합장 예배할 마음을 절로 우러나오게 한다. 본존불이 서쪽을 바라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서방 극락세계의 아미타불이라 여겨진다.
본존불은 얼굴보다 큼직한 머리 풍만한 얼굴 당당한 체구 흐르는 듯한 곡선미등 8세기 보살상의 전형적인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다. 왼쪽 협시보살은 관음보살 오른쪽 협시보살인 대세지보살이다. 이 불상들의 머리 뒤에는 모두 둥근 선으로 머리광배가 표현되어 있다.

이번 답사에서 여러 가지 길을 만났다.
저 길이 끝나는 곳에서 누군가가 반가이 맞아 줄 것 같은 진흥왕릉 옆 소나무숲 사이로 난 작은 오솔길도 있고 좋은 사람과 나즉히 얘기 나누며 걷다가 노송들이 들려주는 옛 노랫소리를 들으며 그 그늘 아래 잠시 쉬어가고 싶은 태종무열왕릉 안의 길도 있고
담장너머로 보이는 자동차가 쉼 없이 오가는 늘 분주하기만 한 길도 있고
고분의 높은 곳에서 멀리 바라보이는 그리움이 묻어나는 아련한 저 건너 철길도 있고..
길은 늘 여러 갈래이다.
갈 수 있는 길과 갈 수 없는 동경의 길..
그러나 같은 생각으로 한 곳을 바라보며 같은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이 있기에
답사길은 언제나 행복한 길임에는 분명하다.

덧붙임
좀 바빴고 좀 아팠었고 또 쫌 게을렀고.. 숙제가 늦었음에 대한 궁색한(?) 변명들. ^ ^
멀리 춘양에서 달려오신 이진숙님 구미에서 온 조현우.
진흥원답사에 처음 오신 여러분들..
다음달 답사에서도 반가운 인사를 나눌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선도산마애불과의 만남을 도와주신 두분께도 엄청 고마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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